"당신은 소중하니까요"…장 폴 아공 로레알 CEO, 공격적 M&A·감성 마케팅으로 '뷰티제국' 일궈
‘당신은 소중하니까요’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로레알. 랑콤, 키엘, 더바디샵, 이브생로랑 뷰티 등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린 로레알은 1909년 프랑스 파리에서 창업한 이래 106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글로벌 화장품업계 1위에 오른 ‘뷰티제국’이다. 소유와 경영이 철저히 분리된 로레알은 최고경영자(CEO)에게 은퇴할 때까지 전권을 부여하는 기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로레알의 다섯 번째 후계자로 2006년부터 로레알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장 폴 아공(59). 그는 회사에서 늘 웃는 경영자로 통한다.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아공은 “스트레스를 받는 조직이 성공한다고 믿지 않는다”며 “기분 좋은 환경이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세계 여행 꿈꾸던 청년의 ‘꿈의 직장’

아공은 1956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그의 침실은 여행하고 싶은 브라질, 인도, 중국 등 세계 지도로 가득했다. 학창시절부터 그의 목표는 세 가지였다. ‘사업가가 되는 것’ ‘팀을 이뤄 일하는 것’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것’이 그것이다.

22세이던 1978년 그는 유럽 최고의 경영대학원으로 평가받는 파리 공립 경영대학원(HEC)에 입학한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HEC 출신이다. 아공은 사업가가 되기를 원했던 부모님의 권유로 재무학(finance)을 전공했지만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담당교수는 아공의 다른 재능을 눈여겨봤다. “장 폴, 너는 분명히 마케팅 재능을 타고났어”라는 교수의 조언은 아공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마케팅으로 진로를 바꾼 뒤 로레알의 입사 기회가 찾아왔다. 세계 여행을 꿈꾸던 그에게 세계를 누비며 일할 수 있다는 로레알은 말 그대로 천직(天職)이었다. 아공의 업무 책상에는 이제 침실의 지도 대신 지구본이 놓였다.

가는 곳마다 위기…맷집 좋은 CEO

로레알에서 그의 목표가 실현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입사한 지 3년째에 그리스 지사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위기에 가까웠다. 작은 조직에 실적도 신통치 않았던 그리스는 로레알 직원이 모두 기피했던 근무지였다. 아공에 앞서 5명이 회사의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던 터였다. 그들은 대신 아공을 추천했다. “젊어서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는 이유였다. 처음으로 자신만의 팀을 이끌 수 있는 그리스는 아공에겐 자신의 목표를 충족할 수 있는 무대였다. 4년 동안 실적을 크게 올린 아공은 1985년 당당하게 프랑스로 개선한다.

그리스에서의 위기는 서막에 불과했다. 신제품 출시와 비오템(Biotherm) 브랜드 육성에 관여하던 아공은 1994년 독일 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독일은 1990년의 동·서독 통일로 어수선해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을 때였다. 아시아지역 총괄 매니징 디렉터로 옮긴 1997년에는 태국 바트화가 폭락하면서 동남아시아 일대에 외환위기의 파고가 덮쳤다. 2001년 미국 지사장으로 갔을 땐 9·11테러 직전이었다. 당시 로레알 CEO였던 린제이 오웬 존스는 “아공을 보내는 곳마다 위기가 터진다”며 짓궂은 농담을 던지곤 했다. 아공은 지난 5월 미국 금융전문지 배런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순간이 내게는 좋은 훈련이었다”며 “도전을 통해 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강인함이나 재능, 기술 등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공의 능력을 지켜보던 오웬 존스는 아공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다.

공격적인 마케팅…인수합병으로 사업 확대

2006년 CEO에 오른 아공은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추진했다. 중국 시장 확대와 더불어 인도네시아, 이집트, 멕시코 등에 화장품 공장을 세웠다. 그리스 지사장 시절부터 몸으로 터득한 위기관리 능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2009년 상반기 순이익이 13.7% 감소하며 흔들렸던 로레알은 2010년 말 순이익이 24.9% 증가하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아공은 대대적인 홍보와 마케팅에 나섰다. 대부분 회사가 긴축에 들어갈 때였다. 수십 종의 메이크업, 스킨, 헤어케어 상품에 대한 투자도 지속했다. 아시아 금융위기 상황을 극복할 때 그가 썼던 방식 그대로였다. 에씨 코스메틱, 클라리소닉, 어반디케이 등 화장품 브랜드도 인수했다. ‘도전 정신을 가진 리더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정신을 가진 큰 회사’가 그가 추구하는 경영 마인드다.

이 같은 공격경영은 로레알이 글로벌 뷰티시장 1위를 지키는 밑거름이 됐다. 로레알의 시장 점유율은 2013년 기준 30.52%에 이른다. 유니레버(21.33%)와 P&G(20.50%)를 크게 앞서는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225억유로(약 28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로레알은 올해도 14%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화장품은 과학, R&D가 경쟁력”

아공은 뷰티제품을 ‘병 속의 과학’ 혹은 ‘병 속의 기술’이라고 부른다. 연구개발(R&D)에 그만큼 치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로레알이 R&D에 쏟아붓는 돈은 연간 매출의 3.4% 규모다. 뷰티업계에서 가장 많은 투자액으로 지난해 기준 7억6000만유로(약 9400억원)다. 로레알 직원 7만8600명 중 3800여명이 피부·모(毛)·줄기세포 등을 연구하고 있다. 대륙별 특성에 맞는 뷰티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도 그의 지론. 문화와 인종이 제각각인 화장품 소비자들에게 코카콜라처럼 단일 제품으로는 승부를 걸 수 없다는 것이다.

아공은 향후 10년의 시장 확대를 위해 이른바 ‘공유 뷰티(Sharing Beauty with all)’에 주력하고 있다.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 용기를 사용하거나 이산화탄소 배출량, 물 소비량, 포장 등 폐기물 총량을 2005년 대비 60% 선으로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10억명 이상의 신규 소비자를 확충하겠다는 것이 아공의 포부다. 아공은 “뷰티산업에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성숙시장 같은 건 없다. 언제나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공동의 선(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회사의 수익 창출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