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풀기에만 의존하는 아베노믹스, 언제든 꺾일 수 있다
말투는 조심스러웠지만 내용은 거침이 없었다. 일본 도쿄대 연구실에서 만난 시노하라 나오유키 교수(전 국제통화기금 부총재)는 인터뷰 내내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돈풀기’에만 의지하고 있을 뿐 구조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본 경제 회복세가 언제든 다시 꺾일 수 있다는 게 시노하라 교수의 평가였다. 한국 경제에 대해선 “‘일본식 잃어버린 20년’을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경고했다.

▷지난 2분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세 분기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습니다.

“일본 경제는 한마디로 ‘오도리바(계단과 계단 사이 일시적 휴식공간. 경기 상승 국면에서 회복세가 둔화하는 상태)’입니다. 더 나빠질지, 아니면 회복할지 변곡점에 있습니다. 7~8월 광공업 생산지수 등 최근 수치를 보면 썩 좋지 않습니다. 3분기 국내총생산(GDP)도 전 분기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단기간 내 강한 경기회복세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1차 아베노믹스는 금융 완화, 재정지출 확대, 성장전략 세 개의 화살로 이뤄졌습니다. 첫 번째 화살인 대규모 금융 완화는 나름 효과가 있었습니다. 엔저효과로 기업 실적이 좋아졌습니다. 두 번째 화살도 일시적인 부양효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은 기대만큼 성과를 못 내고 있습니다. 노동시장 개혁과 규제 완화 등 ‘통증을 수반한 개혁’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세 개의 화살이 하나로 뭉쳐져야 잘 부러지지 않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난달 말에는 ‘강한 경제’ ‘육아 지원’ ‘사회보장’의 세 분야를 강조하는 2차 아베노믹스를 발표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정책의 방향은 맞습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관건이죠. 아직은 상세한 내용이 나오기 전이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저출산·고령화나 사회보장 등은 예전부터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제들입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필요한 재원 등은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전체적인 디자인이 안 된 상태로 보입니다.”

▷2020년께 GDP 600조엔 달성도 얘기했는데요.

“숫자 자체는 의미가 없습니다. 희망이 반영된 수치입니다. 1%대 실질 성장률과 2%대 인플레이션이 수년간 지속된다면 (600조엔을) 달성할 수 있겠죠. 그런데 구체적인 대책이 안 보입니다.”

▷올해 일본 경제는 얼마나 성장하겠습니까.

“1% 정도일 겁니다. 기업 이익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아 경제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아베노믹스의 실질 성장률 목표인 2%와는 상당한 차이입니다. 2% 성장은 아무도 달성 가능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내각부가 추산한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0.6~0.7%에 불과합니다.”

▷최근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일본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습니다.

“일본의 국채 발행 잔액은 막대하고, 재정은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국가 재정이 지속 가능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부터 지출을 줄이거나 수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다만 일본 국채는 대부분 일본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어 당장 재정위기와 같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진 않을 것입니다.”

▷일본 정부의 재정건전화 노력은 어떤가요.

돈풀기에만 의존하는 아베노믹스, 언제든 꺾일 수 있다
“2017년 소비세율을 8%에서 10%로 올리기로 했으니까 이것이 성공하면 이후에 비슷한 또 다른 정책이 나올 겁니다. 2020년 이후 장기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미리 생각해야 합니다. 일본의 재정위기는 향후 2~3년 내에 일어날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5~10년 간격으로 미래의 계획을 미리 짜 놓지 않으면 엄청난 위험이 닥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일본 경제 상황이 지난해 10월 추가 금융 완화 때와 비슷하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추가 완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시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금융 완화가 실물경제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불투명합니다. 지금보다 엔화 가치가 더 내려가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실물경제가 좋아진다고 할 수 없는 만큼 신중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추가 금융 완화는 없을 것으로 봅니까.

“지금 단계에서 추가 금융 완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재정적인 측면에서 약간의 부양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구조개혁을 가속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융 완화에만 의존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엔저 추세가 최근 주춤하고 있습니다.

“아베 내각 출범 전 고점을 기준으로 보면 엔화 가치가 40% 정도 떨어졌습니다. 많은 요소가 얽히면서 그 영향으로 지금 수준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여건이 바뀌었습니다. 세계 경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엔화 약세 추세로 가기 힘들 겁니다. 금융 완화도 계속 시행할 수는 없을 거고요. 현 수준인 달러당 120엔 전후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최근 일부 지표들이 괜찮아 보이지만 중국은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 위험합니다. 투자의 자유가 없어 경제의 생산성이 매우 낮습니다. 그 배경에는 국영기업이 있습니다. 은행도 국영 은행입니다. 체제가 다르긴 하지만 경제를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운영하지 않으면 생산성을 높이기 힘들 겁니다.”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변수는 무엇입니까.

“미국의 금융정책이라고 봅니다. 신흥국으로 들어온 돈이 역류해 나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펀더멘털이 약한 신흥국은 환율 방어와 자본 유출에 신경써야 합니다.”

▷미국이 연내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는 많이 회복되고 실업률도 내려갔지만, 노동시장을 보면 직업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생산인구 중 취업인구를 보면 그렇게 높지 않아요. 취업을 포기한 사람이 증가했고, 임금 인상률도 별로 높지 않습니다. 비정규직이 더 많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입니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주저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한국에선 ‘일본식 잃어버린 20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당연한 걱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인구 구성을 보면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합니다. 일본보다 15년 늦게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시작되는 거죠. 한국은 출산율이 매우 낮아 생산가능인구 감소 추세가 급격히 진행될 겁니다.”

▷한국에선 아직 인구 감소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노동시장 내 임금 격차나 중소기업 문제 등 다른 현안 때문이겠죠. 하지만 인구 감소는 무조건 다가올 미래의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회보장 문제와도 직결되죠. 늦기 전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 시노하라 도쿄대 교수는 …

시노하라 나오유키 도쿄대 정책비전연구센터 교수는 경제관료 출신으로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한 일본의 대표적 국제금융 전문가다.

1975년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대장성(현 재무성)에 들어가 차관까지 지냈다. 재무성 차관 시절에는 재정·금융 정책과 관련한 글로벌 협상을 주도하며 IMF 재원 확충과 치앙마이이니셔티브 다자화기금(CMIM)의 역할 강화 등에 이바지했다.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외모와 묵묵히 일만 하는 스타일 때문에 일본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검객 ‘네무리 교시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953년 일본 야마나시현 출생 △1975년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대장성 근무 △1979년 미국 프린스턴대 공공정책대학원 석사 △1986년 미국 하버드대 국제문제센터 전문위원 △1990년 사이타마대 방문교수 △1998년 ADB 이사 △2006년 재무성 국제국장 △2007년 재무성 차관 △2010년 IMF 부총재 △2015년 도쿄대 교수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