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중 협력' 반기면서도 "목소리 내달라" 대중 압박 동참 촉구
한·미·일 삼각협력 다지기…한·미·중 협력 강화는 미지수
인니 끌어들여 대중 포위구도 완성…TPP 통한 새 경제질서 구축


"한국이 아시아 재균형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16일 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16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아시아 재균형 외교가 큰 틀에서 일단락됐다.

미국의 외교사령탑인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2월 예고한 대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4월)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9월)에 이어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까지 모두 마무리한 것이다.

미국이 한해에 동북아 주요3국인 한·중·일 3국 정상을 워싱턴에 잇따라 초청한 것은 외교적으로 전례 없는 일이다.

동남아의 맹주인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오는 25일 방미하는 일정까지 감안하면 올 한해 동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하는 화려한 정상외교 이벤트가 펼쳐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숨은 키워드는 중국…'협력'보다는 '대립' 구도

중동에 쏠린 외교·안보·경제자산을 아시아로 다시 가져오는 개념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숨은 키워드는 '중국'이다.

미국은 표면으로는 중국의 평화로운 굴기를 환영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자국 주도의 패권질서에 주도하는 '경쟁자'이자 '위협적 존재'로 인식하면서 외교·안보적 대응을 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을 상대로 협력의 외연을 점차 넓혀가면서도 일정한 선을 넘어서는 패권 확장 기도는 확실히 제어하는 견제와 압박의 '공조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재균형 외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하순 시 주석의 국빈 방미는 '협력'보다는 '대립' 쪽으로 가있는 미국의 대중 전략의 결을 선명히 드러냈다.

미국은 남중국해와 인권, 사이버, 티베트 문제 등 중국이 불편해하는 이슈들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중국과의 갈등이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과 의도적으로 충돌하는 것은 피하겠지만, 미국의 패권질서를 위협하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평가다.

◇한·일관계 개선 압박하며 한·미·일 삼각협력 구축

4월 하순 아베 총리와 지난주 박 대통령의 방미는 이 같은 대 중국 견제의 구도를 형성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외교 이벤트였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분석이다.

그 핵심은 한·미·일 안보협력 구축에 놓여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양대 조약동맹인 일본과 한국을 삼각 협력의 틀로 묶어놓을 경우 중국을 가장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안전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바마 행정부는 한·미·일 안보협력 구축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한·일관계 악화를 풀기 위해 올해초 부터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미국이 지난 4월 미국 국무부에서 토니 블링큰 부장관 주최로 사상 최초의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를 개최한 것은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를 강력히 촉구했고, 이는 한·일 양국 정부의 태도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8·15 담화에서 한국의 기대에 턱없이 못미치는 과거사 인식을 드러냈지만, 미국의 압박을 의식해 가급적 과거사 언행으로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기류가 읽히고 있다.

박 대통령이 방미기간이었던 지난 15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한·중·일 정상회담 계기에)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그 기회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이런 면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올해 아시아 재균형 외교를 통해 아직은 미흡한 수준이지만, 한·일 간의 관계 개선 여지를 넓히고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의 기초를 다지는데 일정정도 성공했다는 평가가 가능해보인다.

◇'한중 협력' 환영하며 한국 향해 "목소리 내달라"

주목할만한 대목은 미국이 단순히 한·미·일 안보협력 메커니즘을 만드는 차원을 넘어 한국과 일본을 향해 대중국 견제를 위한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이미 중국을 상대로 노골적으로 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에 더해 한국을 상대로 보다 노골적으로 목소리를 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중 협력관계의 진전을 환영하면서도 중국의 국제규범과 법 준수를 거론하며 "한국이 목소리를 낼 것(speak out)"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당장 외교가에서는 미·중간 갈등이 계속되는 남중국해와 사이버안보 문제를 놓고 한국이 보다 분명하게 미국 편을 들어줄 것을 촉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이 아시아 재균형 외교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추켜세운 것도 이 같은 '압박성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이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한국의 외교를 자칫 시험대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정부가 제안해온 한·미·중 삼자 협력 프로세스가 어느정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미국은 북한 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지지하고 있지만, 이 같은 대 중국 견제 구도가 지속될 경우 협력의 밀도를 높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동남아의 패권국인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오는 25일 방미는 미국과 일본, 호주,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로 이어지는 대 중국 포위망의 구축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7월 응웬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백악관 집무실로 불러 역내 평화와 안정을 고리로 한 대 중국 관계를 논의한 바 있다.

◇TPP 통해 미국 주도 경제질서 새판짜기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또다른 축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TPP) 협정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이 참여하는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인 TPP는 미국 주도의 역내 경제질서를 확립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특히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과 아·태 자유무역지역지대(FTAAP) 구축을 내세우며 역내 경제적 패권을 확장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에 제동을 건다는 전략적 목적도 담겨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각국의 국내 비준절차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지만, TPP는 이미 큰 틀의 고비를 넘겨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됐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평가다.

한 외교소식통은 "올해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외교의 키워드는 아시아였다"며 "쿠바 국교정상화와 이란 핵협상 타결에 이어 아시아 재균형 전략까지 큰 틀의 그림을 완성하면서 외교 분야에서 중요한 레거시를 남기게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