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만달러 보너스' 걸린 빅게임…"2019년까지 주가 두배로 끌어올려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2012년 미국 이동통신사 스프린트를 사들였다. 당시 미국 이동통신업계에서 3위였던 스프린트와 일본 3위인 소프트뱅크의 힘을 합쳐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포부였다. 손 회장은 “도전은 위험을 수반하지만 도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더 위험하다”며 자신있게 스프린트를 끌어들였다. 그러나 도전은 쉽지 않았다. 인수 다음해 2분기에만 200만명의 가입자가 빠져나갔다. 미국 3위였던 스프린트는 T모바일에 자리를 내주고 4위로 내려앉았다. 스프린트 인수는 ‘승부사(손 회장)의 실수’였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위기에 빠진 스프린트의 ‘구원투수’로 나선 게 마르셀로 클라우르 최고경영자(CEO)다. 손 회장은 지난해 43세인 그를 CEO에 임명하며 스프린트 재건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클라우르 CEO는 지난 8월 재계약을 하면서 새로운 임무를 받았다. 2019년까지 주가를 현재의 배 이상 끌어올리라는 것. 성공하면 8000만달러(약 938억원)를 특별 보너스로 받는다. 그는 “스프린트에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기업문화를 도입하는 게 내 역할”이라며 경영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 놓치지 않는 사업 본능

클라우르 CEO는 1970년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태어난 미국·볼리비아 이중국적자다. 그가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한 건 18세 때였다. 학기 중에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벤틀리대에서 공부하고 방학 때는 볼리비아로 돌아와 가족들과 지냈다. 방학이면 그는 가족이 경영하던 식품 공장에서 도매가로 식료품을 샀다. 식료품은 어머니 차에 실어 시장으로 가져갔다. 차 트렁크를 열어두고 시장에서 상인들과 섞여 식품을 팔았다. 클라우르 CEO는 이 시기가 “사업에 흥미를 갖게 된 첫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두 번째 사업은 대학 시절이었다. 역시 일상에서 사업기회를 봤다. 대학원생들은 학회에 참석하느라 비행기를 타는 일이 잦아 항공 마일리지가 많았다. 이들에게 마일리지를 산 뒤 싼값에 비행기표를 구하는 대학생들에게 팔았다. 이번엔 좀 더 사업의 모양새를 갖췄다. ‘베스트 트래블 컨설턴트’라는 회사명도 짓고 직원도 고용했다.

처음 손 회장의 눈에 든 건 ‘브라이트스타’를 미국 최대 휴대폰 유통업체로 키워내면서다. 단말기 제조사에서 제품을 대량으로 구입한 뒤 통신사에 납품하는 업체다. 클라우르 CEO가 휴대폰 사업에 발을 들인 건 우연에 가까웠다. 볼리비아 축구협회 매니저를 그만두고 매사추세츠로 돌아와 지내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을 사려고 가게에 들어섰는데 주인이 매장을 경영하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토로했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게 불만이라며 가게를 팔고 싶다고 했다. 그는 클라우르에게 매장을 운영할 만한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죠, 저요”라고 말한 게 사업의 시작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해 자본금이 거의 없었던 그는 헐값에 가게를 넘겨받아 위탁경영을 시작했다. 가게에서 나온 수익금은 한동안 주인에게 줬다. 휴대폰 판매업의 본질을 이해하게 됐을 때쯤 가게 주인과 마찰이 생겼다. 미국 전역으로 뻗어나갈 체인점으로 성장하려면 번 돈을 모두 투자해야 한다는 클라우르의 주장과 달리 주인은 안주하고 싶어했다. 결국 클라우르는 이 매장의 지분을 되팔고 1997년 자기만의 사업을 시작했다. ‘브라이트스타’다. 그는 사업을 연매출 106억달러(약 11조원) 규모로 키웠다. 2013년엔 소프트뱅크로부터 12억6000만달러의 투자를 받으며 손 회장과 첫 인연을 맺었다.

하루 20시간 일하는 ‘일벌레’

클라우르 CEO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한마디로 ‘일벌레’라 부른다. 브라이트스타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라파엘 거즈만은 “거짓말을 보태지 않고 눈떠서 감을 때까지 20시간을 일하는 사람”이라며 그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함께 외국으로 장거리 비행을 할 때면 그동안 업무 관련 메일이 몇 통이나 쌓이는지를 내기하곤 했다는 것. 보통 메일이 300통 이상 쌓일 정도로 업무량이 많다는 거다.

그는 ‘록스타’ 타입의 CEO이기도 하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의 프로축구팀 볼리바르의 구단주이면서 유명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워 이목을 끌었다. 그가 처음 미국 대중들에 알려진 건 미국의 가수 겸 배우인 제니퍼 로페즈를 자신의 40세 생일 파티에 초대한 뒤부터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몸값으론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여배우로 꼽혔던 로페즈를 생일파티에 부른 사람이 누구냐에 대중들의 관심이 쏠렸다. 영국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과도 친분이 두텁다. 베컴이 마이애미 연고의 축구구단을 창단하는 데 투자해 적극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가 1899년 시작해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스프린트의 CEO가 된다고 했을 때 우려가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그가 110년이 넘는 전통의 스프린트와 잘 섞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는 CEO로 취임하면서 “내가 실패한다면 성공하지 못한 기업가 정도로 남겠지만 스프린트를 성공으로 이끈다면 엄청난 기업회생 성공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더독의 반란’ 꿈꾸는 스프린트 구원투수

클라우르 CEO는 취임 이후 스프린트에서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며 ‘언더독의 반란’을 꿈꾸고 있다. ‘언더독’은 스포츠에서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그는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건 약자가 강자를 뒤집고 이길 가능성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라며 스프린트의 개혁을 지휘하고 있다.

그는 빠른 의사결정을 강조한다. 취임한 지 10일 만에 굵직한 전략을 줄줄이 내놨다.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을 4000명 감원하고 마케팅 외주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더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업체에 돈을 내지 않은 고객들이 가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를 없앴다.

클라우르는 “결정 중엔 옳은 것도, 옳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스프린트를 지금의) 하락하는 궤도에서 상승하는 궤도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고 설명했다. 이동통신사가 단말기를 구입해 소비자에게 유료로 대여해주는 ‘리스 판매 방식’도 개발했다. 소비자가 매달 할부로 기계값을 지불하는 기존의 방식을 뒤집은 것이다. 이를 위해 단말기 임대 회사 설립을 준비 중이다.

스프린트에 따르면 마르셀로 취임 후 매출이 상승세로 전환됐다. 영업이익도 흑자로 전환돼 실적 개선 추세다. 해약률 역시 사상 최저 수준이다.

손 회장은 “긴 어두운 터널이지만, 그 터널 너머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스프린트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