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반대로 공동보조 차질…新냉전의 그늘

유럽연합(EU)이 당초 중국 전승절 행사에 회원국 정상 전원 불참 등 공동 보조를 취하려 했으나 체코 때문에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티코 유럽판 등의 보도에 따르면, EU는 지난 6월 회원국 외교분야 실무자회의에서 중국의 '항일(抗日)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와 관련, 회원국 정상 불참 등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7월 외교장관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논란 끝에 EU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공식 투표 안건으로 올리지 않기로 정리했다.

회원국 대표 모임인 이사회에서 체코가 반대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EU 차원의 공동보조 지침은 마련되지 않았고 '각 회원국이 알아서' 결정하게 됐다.

결국 EU 28개 회원국 가운데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가 정상이 중국의 2차대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나라는 체코 한 나라 뿐이다.

밀로스 제만 체코 대통령은 지난 5월에도 러시아의 2차대전 승전행사에 참석했다.

당시 다른 대부분 유럽 국가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불참했다.

총리 중심의 내각제인 체코 정부는 EU 내 분위기를 의식, 불참을 원했으나 법률 상 국가수반인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는 일을 적극 만류하기는 어려웠다.

제만 대통령은 미국 등 서방 일변도 외교는 지양해야 하며 러시아, 특히 중국과의 적극적 교류가 경제를 비롯한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입장에 서 있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실제 이번 방중 때 중국과 다양한 경제 협력 합의서에 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EU 회원국 가운데 중국 전승절에 장관을 보낸 나라는 극소수이며, 대부분 각료급에 준하는 정치인이나 외교관 등을 보내는데 그쳤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외무장관을 보내 그나마 격식을 차렸으며, 영국의 경우 법무장관을 지낸 보수당의 고위정치인 케네스 클라크를 보냈다.

거대한 중국시장을 노리고 역대 총리들이 뻔질나게 베이징을 방문해온 독일의 경우엔 주중 대사가 참석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정도가 그나마 거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젠 강연이나 컨설팅으로 돈을 버는 '전직 총리들'이며, 게다가 개인 자격으로 초청받았을 뿐이다.

그동안 유럽 국가들은 중국과의 무역과 시장 진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각료들은 물론 총리나 대통령이 자주 방문하고 중국을 불편하게 할 발언을 삼가거나 수위를 낮추기도 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전승절 행사 참석을 꺼리는 것은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군사 외교적 충돌과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국제 상황 때문이다.

한스 디트마르 슈바이스굿 EU 주(駐)중국대표부 대표는 앞서 유럽 정상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 "군사 퍼레이드가 포함된 이 행사가 과연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일지 EU 국가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과 주변국, 특히 일본과의 영토 및 역사 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군사력을 과시하는 듯한 열병식이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생각이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군이 참석하는 것도 EU 정상들의 불참 원인 중 하나라고 유럽 언론은 보도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동유럽 지역의 군사훈련을 대폭 늘리고 있어 EU 및 미국과 충돌하고 있다.

이밖에 열병식이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유혈 진압한 현장인, 톈안먼광장에서 열린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찌 됐든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국제정치의 풍경은 과거 냉전시대와는 사뭇 다르면서도 여전히 그 그늘 속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