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수준 통제로 도심은 '적막'…자원봉사자 125만 선발해 곳곳 배치
관영 방송들, 온종일 열병식 관련 보도로 분위기 고조
거리·건물마다 '위대한 승리' 적힌 플래카드로 '붉은물결'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은 수천만 명이 생활하는 초거대 도시다.

등록인구만 2천 만명이 넘는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체제의 최대 이벤트가 될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하루 앞둔 2일 오전 도심은 이례적으로 한산해 '적막감'까지 감돌았다.

평소 같으면 꼬리에 꼬리를 문 차들로 꽉 막혀 있어야 할 시내 고속화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많은 차들이 제한속도인 시속 80㎞를 훌쩍 넘겨 운행했다.

한 택시기사는 "베이징에 이렇게 차가 적을 수도 있나"라며 신기해했다.

이는 이날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열병식 교통관제'를 우려해 많은 사람이 차를 갖고 나오는 것을 포기한 데다 시내 중심가 건물들이 아예 출입차단 조처를 내린 탓이다.

도심 운행을 꺼리는 택시기사들이 손님과 옥신각신하는 장면도 보였다.

사무실이 열병식 무대인 톈안먼(天安門) 광장 부근에 있다는 한 회사원은 "(열병식 전날인) 2∼3일에는 건물 전체에 대한 진입이 아예 폐쇄된다면서 아예 쉬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낮 1시께에는 무장경찰들이 창안제(長安街·베이징을 동서로 관통하는 중심도로) 양편에 약 50m 간격으로 죽 늘어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장면도 목격됐다.

중국당국은 이번 열병식을 위해 일반인 자원봉사자 125명을 선발해 베이징 시내 곳곳에 배치했다.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베이징 최대 짝퉁 전문상가인 슈수이제(秀水街) 앞에서는 공안요원과 하늘색 옷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을 제외한 일반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상가 정문 앞에는 무장경찰 차량도 배치됐다.

주변 수백 개 상가들도 오늘 아예 문을 열지 않은 듯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오후부터 베이징 도심은 사실상 '위수(衛戍)지역'으로 편입된다.

톈안먼광장 반경 수 ㎞ 일대에서는 엄격한 교통관제와 주요건물에 대한 출입금지 조치가 시행되고 광장을 관통하는 지하철 운행도 중단된다.

일반인이 걸어서 톈안먼 광장이나 그 부근에 있는 창안제에 접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들 도로는 행사 당일 열병부대가 행진할 예정이다.

광장에서 약 1㎞가량 떨어져 있는 왕푸징(王府井), 첸먼(前門) 등의 쇼핑가도 잠정 폐쇄된다.

도심의 많은 식당과 상점이 4일 이후 영업을 재개할 것이라는 공고문을 내걸었다.

무장경찰, 공안, 자원봉사자 등을 합쳐 최소한 수십만 명의 인원이 이번 열병식 경계에 동원되고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중국의 일부 인터넷언론은 이런 삼엄한 통제조치를 '국부적 계엄'(戒嚴)이라고 표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유령도시'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도시의 움직임은 둔해진 반면, 열병식 분위기는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관영 중국중앙(CC)TV를 비롯한 중국언론들은 이른 아침부터 열병부대의 최종 훈련 장면을 시시각각 생방송으로 내보냈고 항일전쟁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방영했다.

럭셔리 자동차 등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한 라디오방송은 항일전쟁 시기에 어떤 차종들이 활약했고 이 차들이 어디에서 제작됐는지 등을 소개했다.

대형빌딩, 육교, 옥외 스크린 등 시내 구석구석에서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대회', '위대한 승리' 등이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붉은색 오성홍기를 단 집들도 볼 수 있었다.

열병식이 열리는 날 베이징에 스모그가 없을 것이라는 소식도 중국을 고무시키고 있다.

이날 많은 지면을 열병식 소개에 할애한 베이징의 유력신문 신경보(新京報)는 1면 톱기사를 열병식 당일 베이징의 날씨가 좋을 것이라는 소식으로 장식했다.

(베이징연합뉴스) 이준삼 특파원 js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