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걸고 '벼랑끝 전술'을 펼쳐온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조기에 사퇴 카드를 던진 것을 두고 계산된 도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국영방송 ERT를 통해 생중계된 연설에서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이 승인된 만큼 이후 10월부터 진행될 국제채권단과의 채무재조정 협상을 이끌려면 총선에서의 강력한 지지를 통한 권한 부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가 그리스에 3년 동안 860억 유로(약 112조원)를 지원하는 내용의 3차 구제금융안을 최종승인해 첫 분할금이 지급되자마자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는 선거를 위한 과도정부를 구성해 다음달 20일 조기총선을 치르게 될 전망이다.

그리스는 이날 첫 분할금을 받아 상환기일에 맞춰 유럽중앙은행(ECB)에 34억유로(약 4조5천억원)를 갚고 파산을 면했다.

당초 그리스에서는 치프라스 총리가 9∼10월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지만, 그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행동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7개월간의 롤러코스터 드라마 끝에 치프라스 총리가 계산된 도박을 하려 하고 있다"면서 "잔인한 운명이 그를 역사의 각주로 남길지, 계산된 도박이 성공할지 관심"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월 25일 "긴축을 취소하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집권한 치프라스 총리는 지금까지 공약 대부분을 어겼지만, 노련함과 카리스마를 무기로 지난달 말까지 61%에 이르는 지지율을 유지했다.

가디언은 3차 구제금융이 확실해진 이후부터는 그의 인기가 크게 하락했을 것이라며 그것이 그가 조기사퇴 카드를 던진 이유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만약 치프라스 총리가 총선에서 승리해 권한을 새로 위임받는다면 진보적 중도로 스스로를 재위치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를 구한 정치지도자로 등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 유권자들이 새 총선에서 자신을 지지해 급진좌파를 제외한 새 내각을 꾸릴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도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구제금융안에 대한 논란에도 치프라스 총리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으며, 이제 조기총선을 통해 자신에 대한 지지가 굳건한지 시험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