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한국을 ‘통화 약세국’ 명단에 올렸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로 한국 금융시장에서 외국 자본 유출이 가속화돼 위기가 올 수 있다는 1차 경고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고 중국과 수출 경쟁관계라 다른 국가보다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내우외환' 몰린 경제] "위안화 절하로 수출 직격탄"…'불안한 10개국'에 이름 올린 한국
○한국·싱가포르 등 中의존도 높아

모건스탠리는 최근 작성한 ‘글로벌 환율전략 보고서’에서 한국 원화를 싱가포르 달러, 대만 달러와 함께 대표적인 신흥국 취약 통화로 지목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따른 위기전파 경로를 △중국과 수출 경쟁관계에 있거나 △국가 경제의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거나 △수입물가 하락에 따라 물가상승률 둔화 압력을 받는 세 가지 경우로 분석했다.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은 총수출의 20%,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첫 번째와 세 번째 경로를 통해 영향을 받게 된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한스 레데커 모건스탠리 수석 환율 전략가는 블룸버그통신에 “중국의 환율정책 변화로 인한 희생양은 대(對)중국 수출 비중이 높고 중국과 수출 경쟁을 하는 국가”라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이를 근거로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태국, 칠레, 콜롬비아, 러시아, 페루 10개국을 외환시장 취약국으로 꼽았다. 블룸버그는 이를 ‘불안한 10개국(Troubled 10)’으로 지칭하면서 모건스탠리가 2013년에 위기징후국으로 지목한 ‘취약 5개국(Fragile 5)’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원화 가치 떨어져도 수출 감소

모건스탠리는 위안화 가치의 하락과 더불어 중국의 재정확대와 통화완화 정책으로 중국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여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 기업들이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처럼 원화 가치 하락이 수출 증대로 이어지고 고용과 투자를 늘리면서 경기회복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이날 위안화 가치가 5% 추가 하락하면 향후 1년간 한국의 총 수출액이 이전보다 약 3%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위안화 평가절하로 중국 수출품의 글로벌 가격 경쟁력이 상승하면 중국 제품과 경합을 벌이고 있는 기계 석유화학 철강 등에서 한국 수출품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외국인 자금도 이탈 조짐

모건스탠리는 보고서에서 한국 원화를 ‘약세 통화’로 분류했다. 수출 부진이 지속되고 성장률 하락으로 외국 자본 유출이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원·달러 환율이 내년 2분기에 달러당 1200원으로 상승(원화 가치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강세 기조였던 원화가 위안화 평가절하로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수준의 내용으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과 무관하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그러나 내달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빅 이벤트’를 앞두고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보고서가 나왔다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취약 5개국’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꺼낸 모건스탠리가 진원지라는 점도 부담이다.

외국인 자금도 대거 이탈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국내 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국내 상장 주식을 2조3000억원어치, 상장 채권은 2조60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6월 외국인의 주식과 채권 투자가 9500억원 감소세로 돌아선 이후 한 달 만에 매도 규모가 5배가량 불어났다.

모건스탠리는 보고서에 대해 “중국의 위안화 절하에 따른 약세 통화를 분석한 것으로 한국만 특정해서 언급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황정수/이유정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