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꼬인 매듭' 풀기 쉽지 않아
기형적 경상수지흑자 해결 시급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원화 환율 충분히 끌어올려야 한국 경제가 산다

‘경착륙, 중진국 함정, 조로화, 넛 크래커, 샌드위치 위기, 일본화, 잃어버린 10년….’ 한국 경제 앞날에 대한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4%까지 예상했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대로 크게 후퇴했다. 일자리, 자본, 생산성이 갈수록 동반 위축되는 ‘3퇴(退) 현상’으로 중장기 성장 잠재력인 잠재성장률도 3% 내외로 주저앉았다.

성장률 전망치와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요인도 복잡하다. 그리스 사태, 중국 경기둔화 등 대외요인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야 갈등, 각 단체(노조 포함)의 이기주의 등 대내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변수를 통제변수와 행태변수로 나눌 때 통제 불가능한 행태변수가 많아 한국 경제의 앞날을 더 어둡게 한다.

대외변수나 남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한국 경제가 처한 여건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절실한 것은 한국 경제가 처한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경제주체들이 다시 힘을 모으는 일이다. 지금처럼 정책당국과 국회 주도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국민이 스스로 나선다면 그보다 좋은 방안은 없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난항이 예상됐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통과된 데엔 주주가치 이익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 대표기업이 일개 해외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을 당해서 되겠느냐”는 ‘애국심’이 작용했다.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에 이어 오랜만에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대목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원화 환율 충분히 끌어올려야 한국 경제가 산다

정책적으로는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할 만큼 재정정책은 여유가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7% 내외로 재정이 건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과 실행에는 어려움이 많다. 당리당략만 앞세운 정치권 갈등으로 추가경정예산안 등 경제입법이 적기에 통과되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국회 통과가 어렵다면 확보된 재정이라도 운용의 묘를 살리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반 경직성 경비를 줄여 그 재원을 부양효과가 큰 투자성 항목에 밀어주는 '페이 고(pay go)' 방안이다. 국가채무에 시달렸던 미국이 경기를 살렸던 ‘제3의 길’이다. 하지만 한국은 공무원 노조가 강하고 박근혜 정부도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어 쉽지 않다.

금리 인하는 효과 면에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금리와 총수요 간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는 데다 도덕적 설득이 전제되지 않은 금리 인하는 대출금리보다 예금금리를 더 떨어뜨리는 ‘구축효과(금리 인하가 예대마진폭을 확대시키는 현상)’로 경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 금리 인상이 예정돼 있는 때에는 외자이탈 등 부작용이 의외로 클 수 있다.

돈을 풀어 일본 중국 등 인접국이 추진하는 양적 완화에 맞불을 놓는 방법도 있다. 한국 경제가 어려운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을 가진 계층과 대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꺼리는 것은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돈을 풀더라도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과 서민층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한국판 양적 완화 정책’의 핵심이다.

출범 1년을 맞아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최경환 경제팀을 이해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절벽’이란 용어까지 등장하는 한국 경제의 과제를 풀기 위해 한발 물러서 현 상황을 면밀히 따져보면 4대 거시경제 변수 중 기형적인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원화 강세를 초래해 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취업률을 동시에 떨어뜨리는 악순환 고리가 눈에 띈다.

일부에선 “시장개입으로 원화 강세를 약세로 돌려놓으면 되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다. 한국의 경우 이 방안은 쉽지 않다. 200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회의에서 대규모 경상수지흑자국(GDP 대비 4% 이상)은 원천적으로 시장개입을 할 수 없도록 우리 주도로 합의해놨기 때문이다. 국제수지 불균형 해소와 글로벌 환율전쟁 방지 차원에서 당시에는 커다란 성과로 평가받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한국에 굴레가 되고 있다.

시장개입이 어렵다면 한국 경제를 왜곡시키는 대규모 경상수지흑자를 해결해야 한다. 이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원·달러 환율은 1080원을 중심으로 상하 50원 내외에서 움직이는 국내 외환시장의 기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내 기업도 이 틀 안에서 원화 환율을 예측하고 외화를 운용하면 무리가 없어 보인다.

앞으로 원천 면에서 대규모 경상수지흑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적다면 운용 면에서 해외투자 활성화 등을 통해 국내 외환시장에 들어오는 달러 물량을 줄여야 한다. 포트폴리오 외국자금을 해외로 퍼내는 ‘영구적 시장개입(PSI)’도 병행해야 한다. 이런 방안으로 원화 환율을 충분히 끌어올려야 날로 침체하는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다. 외환당국의 이런 정책이 나오면 국내 기업은 원화 환율을 올려잡아 외화를 운용할 것을 권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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