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시트’는 피하면서도 그리스의 백기 투항을 받아낸 국제협상단의 일등 공신은 단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원칙과 일관성의 리더십이 가짜 민주주의와 무책임한 포퓰리즘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메르켈은 제대로 보여줬다.

메르켈은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든 그리스를 유로존에 남겨두려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정면충돌을 불사했다. 지정학적 요인을 의식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절충론도 단호히 배격했다. 메르켈이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언급할 때마다, 또 그런 문건이 유출될 때마다 유럽의 소위 ‘진보 언론’들이 일제히 비난해도 그는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토마 피케티, 폴 크루그먼 등 좌파 학자들까지 가세해 부채탕감을 요구하고 협상타결을 재촉해도 일관된 메시지를 그리스를 향해 던졌다. 무수한 도전과 공격에도 ‘자기 빚은 스스로 갚으라’며 정면 대응했다. 장장 17시간이 걸린 유로존 정상들과의 마지막 협상에서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결국 채권국의 요구를 수용하게 만든 힘이었다. 더타임스는 이 협상에 대해 “브뤼셀에서 있었던 협상 중 가장 잔혹하고 난폭했다. 비공개 협상에서 치프라스는 메르켈의 모든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고 보도했다. 국민투표로 국민의 61%가 빌린 돈을 갚지 말자는 그리스식 저급 민주주의가 메르켈에 의해 박살난 순간이었다.

메르켈의 흔들리지 않은 원칙주의와 일관된 신념에서 이 시대의 리더십을 본다. 구구한 말은 적었고, 말보다도 행동이었다. 온정적인 올랑드도, 타협적이었던 오바마도 메르켈 앞에서 머쓱해졌다. 벼랑 끝 전술로 채권국에 생떼 쓰면서 자국 대중에게 영합하려 했던 치프라스는 결국 그리스를 더 궁지로 몰아넣고 말았다. 21세기의 유령처럼 지구촌을 휩쓰는 포퓰리즘, 국가 차원의 ‘떼거리즘’ 같은 엉터리 민주주의를 막아낸 ‘메르켈리즘’이다. 마거릿 대처 이후에 모처럼 박수받을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