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강경책 구사 끝에 그리스에 3차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분열 위기를 봉합했다.

강공이 유리한 타협을 위한 전술이었다면, 그리고 결과적으로 유로존의 파국을 막았다는 시각에서 보면 메르켈은 다시 한 번 '노회한 유럽의 여제'로서 선방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일찌감치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와 지원 찬성파로부터는 그리스를 너무 가혹하게 다룬다는 야유가 이어졌고, 이제는 반대파로부터 또 다시 그리스의 페이스에 말렸다는 비아냥을 듣게 생겼다.

여기에 유럽 주류의 지지를 받는 유로존 결속과 유럽 통합 심화라는 관점에서 한시적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퇴출)까지 건드린 그가 협상용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지나친 줄타기를 했다는 비판까지 겹친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가 국민투표로 기세를 올릴 때부터 독일의 진보 언론들이 앞서 다룬 것처럼 단기적으로 메르켈은 이미 패배했고, 정치적으로 크게 상처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그리스의 부채 위기가 시작된 2009년 이래로 메르켈은 구제금융 결정에 앞서 그리스의 도덕적 해이를 강도높게 비판하며 지원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매번 쌍두마차 프랑스 등의 양보 요구에 이끌려 못 이기는 척 타협했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메르켈의 지지율은 그때마다 꺾였지만 그는 그리스 1, 2차 구제금융 결정 후인 2013년 보란듯이 3기 집권에 성공했다.

올해로 10년차 집권을 지속하는 메르켈은 단순히 독일 국내뿐 아니라 유럽의 최강 리더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지도자로까지 올라섰다.

메르켈 총리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대명제는 지난달말 자신이 속한 기독민주당(CDU) 창당 70돌 기념대회에서 밝힌 "유로화가 실패하면 유럽이 실패한다(Scheitert der Euro, scheitert Europa)"였다.

놀랍게도 이 언급은 2010년 5월에도, 2011년 10월에도 똑같이 그리스 위기를 두고 재생한 레퍼토리였다.

메르켈은 다만 이번에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타협하는 것은 좋은 유럽인이 아니다"라는 하위명제를 무게 있게 추가했다.

이는 그리스와 함께하는 유로존을 구하되, 원칙있는 타협으로 유로존의 질서를 정돈하고 원심력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였다.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의 아이디어로 알려진 한시적 그렉시트가 카드로 나온 배경이다.

메르켈 총리는 유로존 분열 방지 보다는 질서 유지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그리스를 몰아붙이며 13일(현지시간) 타협에서 그리스의 세부 개혁리스트를 받아냈다.

그는 이날 협상 타결 후 기자들을 만나서도 그리스에 신뢰 회복을 주장하며 갈 길이 멀고 험하다고도 했다.

여론에 민감한 메르켈이 이렇게 나오는 데에는 결정적 이유가 있다.

독일 시민여론은 절반 이상이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지지했다.

게다가 그렉시트가 일어나도 독일은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하는 이들도 80% 가량이다.

한 마디로 '그리스 퍼주기' 프레임이 먹히는 분위기다.

또한 3차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CDU와 자매정당인 기독교사회당(CSU) 소속 연방의원이 100명을 헤아리는 등 정치적 난관이 그 앞에 놓여있다.

독일 정치권은 무엇보다 그리스 위기는 내내 완전한 해결 없이 지속할 난제라는 점에서 메르켈 총리에 큰 부담을 안기고 있는 셈이다.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un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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