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국민징용령 근거"…'식민지배 합법' 기존주장 연장선
진행중인 강제징용 소송 및 日보수층 여론도 염두에 둔듯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이 한일간 합의와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됐음에도 조선인 강제노역을 둘러싼 한일 간 해석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한일간 원만한 합의로 관계개선의 선순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일본이 등재 결정문에 반영된 표현이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오히려 관계개선에 악재로 부각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이 국제적 기준·관행에 비춰 일반적으로 강제노동으로 통용되는 'brought against their will'(의사에 반해), 'forced to work'(강제로 노역) 등의 표현을 결정문에 반영했음에도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일본 내부의 보수층이나 우익세력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으로는 과거 일본의 침략·식민지배와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한 성격규정 및 해석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지난 6일 회견에서 "1944년 9월부터 1945년 8월 종전(終戰) 때까지 사이에 '국민징용령'에 근거를 두고 한반도 출신자의 징용이 이뤄졌다"며 이런 동원이 "이른바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은 (일본) 정부의 기존 견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침략과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일본측 기존 주장과 왜곡된 역사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침략과 식민지배가 합법이었으므로, 그에 따른 조선인 징용이 강제노동은 아니라는 논리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는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합병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일제의 강제, 기만, 범법 등으로 점철됐으며, 이에 따라 관련 조약은 원천 무효이고 식민지배도 당연히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스가 장관이 언급한 1944년 9월 이전에도 조선인 강제징용은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한일간 입장차는 1965년 체결된 기본조약에서도 해소되지 못했다.

한일 기본조약 2조는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한국은 강압·불법에 의한 일제의 조약이 체결 당시부터 불법·무효라고 해석하는 반면, 일본은 '이미'라는 조항을 근거로 체결 당시에는 합법이었으나 '국교정상화 시점'부터 무효라고 해석했다.

특히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brought against their will',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을 쓰고도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한 것은 현재 국내에서 진해중인 피해자들의 소송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940년대 일본 군수업체에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은 후신인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패소했으나, 대법원은 2012년 이를 뒤집고 배상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원은 "원고들의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에 의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2013년 서울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피고 기업들에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지만, 피고 기업들이 불복 절차를 밟아 현재 대법원에서 재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스가 장관은 "한국 정부와의 고위 외교교섭에서 우리나라(일본) 대표의 이번 발언을 한일 청구권 협정의 문맥에서 이용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문제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강제노역에 대해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한 것이지 법적인 문제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면서 이번 등재 결정문과 법적 책임 문제와의 연계성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다만, 정부는 강제징용 청구권 문제와 관련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취지의 입장을 견지해오다 2012년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에는 구체적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대법원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최종 배상판결이 나고, 정부가 관련 일본기업들의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에 나서면 한일간 외교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