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하락'에 베팅…"연내 130엔 갈 것"
일본 엔화 약세가 가속화하고 있다. 엔화 가치는 2일 한때 달러당 125엔대에 진입했다. 125엔이 깨진 것은 2002년 12월6일 이후 12년6개월 만이다. 원·엔 재정환율(외환은행 최종 고시기준)은 이날 100엔당 892원49전으로 마감했다. 2008년 2월28일(100엔당 880원75전) 후 약 7년3개월 만의 최저치다.

최근 엔화 하락세가 워낙 가팔라 일시적으로 반등할 순 있지만 연내 달러당 130엔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외환선물시장에서는 엔화 약세에 베팅한 헤지펀드의 주간 엔화 순매도 규모가 2년5개월 만에 최대로 증가했다.

◆가파른 엔저에도 구두 개입 없어

최근 엔화 가치 하락에 불을 댕긴 것은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다. 옐런 의장은 지난달 22일 “올해 안에 연방기금금리 목표치를 높이기 위해 초기 조치를 할 것”이라며 연내 금리 인상 방침을 공식화했다. 올 들어 120엔 전후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엔화가치는 곧바로 하락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일 금리차 확대 예상이 엔 매도·달러 매수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는 아베 신조 정부 출범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아베 정부 출범 때인 2012년 12월 달러당 80엔대였던 엔화 가치는 지난해 10월 말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 완화로 110엔이 깨졌고, 12월에는 120엔도 무너졌다. 일본은행은 연간 80조엔 규모의 자금을 풀고 있다.

이날 아베 총리와 만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환율 수준과 속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며 “환율이 펀더멘털을 반영하고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의 가파른 엔화 가치 하락에 대해 아무런 구두 개입이 없자 시장은 사실상 추가 하락을 용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헤지펀드도 추가 하락 베팅

최근의 엔화 약세는 일본 내 개인 외환투자자를 지칭하는 ‘와타나베 부인’들이 손절매성으로 엔화를 팔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와타나베 부인은 엔화 가치가 120엔 아래로 떨어졌을 때 다시 반등할 것으로 예상해 달러를 매도(엔화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4대 외환거래회사에 따르면 와타나베 부인은 지난달 14~27일 2주 동안 50억달러 이상 달러를 매도했다. 2주간 달러 매도금액이 50억달러를 넘은 것은 2012년 11월 하순 이후 처음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후에도 엔화 약세 흐름이 이어져 손실이 커지자 반대매매로 거래를 청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엔화 추가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들과의 싸움에서 ‘백기’를 든 것이다.

헤지펀드는 엔화가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마켓워치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집계를 인용, 헤지펀드 엔화 매도 포지션이 지난달 22~26일 40억달러 증가해 63억달러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주간 기준 2012년 12월 이후 2년5개월여 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일본 외환시장에는 연내 엔화 가치가 120엔대 후반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 아오조라은행, 씨티그룹 등은 127~128엔을 연말 저점으로 제시했으며, 미즈호은행과 크레디아그리콜은행은 달러당 130엔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