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중 시민단체 의사당 앞서 시위…김종훈 의원 합류해 규탄
이 할머니, 29일 의사당 입장…NYT에 일본의 '진주만 공격' 광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 일본의 침략 범죄 및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워싱턴DC와 버지니아, 메릴랜드 등 인근 지역의 한·미·중 시민단체는 아베 총리의 연설을 하루 앞둔 28일(현지시간) 미 의사당 앞에 모여 아베 총리의 그릇된 역사관을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이 자리에는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와 워싱턴한인연합회, 버지니아한인회 등 한인단체 회원들은 물론 미국의 반전단체인 '앤써 콜리션'의 브라이언 베커 대표, 아태지역 2차 세계대전 만행 희생자 추모회 제프리 천 회장, 대만참전용사워싱턴협회 스탄 차이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또 새누리당 국제위원장인 김종훈 의원과 한국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도 함께했다.

이들은 '아베는 말장난을 중단하고 사과하라',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 '과거를 부정하면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된다', 'HR121(위안부 결의안)은 어디 갔느냐', '(일본이 침공한) 진주만을 잊지 말자', '아베는 배상하라'는 등의 플래카드와 현수막을 들고 아베 총리의 역사 직시 및 사과를 압박했다.

이 할머니는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 연설에서 "아베는 계속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간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바로 15살 때 일본의 대만 가미카제 부대로 끌려간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런데도 계속 거짓말을 하면 인간도 아니다"면서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베는 지금이라도 공식 사과를 하고 법적으로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특히 "내가 내일 의사당에 직접 들어가 아베가 의회 연설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두 눈 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할머니는 연설 끝에 수요집회 때마다 부르는 민중가요 '바위처럼'을 직접 불러 참석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시위를 주관한 함은선 정대위 이사장은 "아베 총리는 더이상 거짓말로 역사를 왜곡하지 말고 당당하게 인정하고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면서 "내일 의회 연설에서 반드시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베커 대표는 "우리가 과거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잊으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라면서 "버락 오바마 정부는 제국주의 일본이 행한 범죄, 특히 일본군의 성노예 피해를 본 주변국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아베 총리는 지금처럼 자꾸 말장난만 할 게 아니라 진지한 자세로 정중하고 완전하게 책임을 져야 하다"면서 "공식 사과와 함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계인 천 회장은 "아베 총리는 미 의회 의원 25명이 최근 집단으로 돌린 '과거사 직시 연판장'의 의미를 되새기고 무겁게 받아들여 반드시 사과를 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아베 총리를 규탄하고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다.

우리 단체에서도 미국 상·하원 의원 전원에게 '아베 규탄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할머니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수 있도록 물밑지원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이 부회장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저지른 것은 명백한 범죄고, 그 누구도 이를 부인하지 못한다"면서 "지금처럼 역사를 부인한다면 일본은 절대 정상적인 국가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할머니와 이들 단체는 29일에도 항의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 할머니는 시위 직후 마이클 혼다(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과 함께 아베 총리가 연설하는 의사당에 입장한다.

이런 가운데 정대위를 비롯한 한인단체와 이날 집회에 참석한 중국·대만 시민단체, 그리고 국제사면위원회(AI) 워싱턴지부 등은 이날 미 주요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에 '미국과 일본 국민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제목의 전면광고를 내고 아베 총리의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이들은 1991년 위안부의 참상을 처음으로 증언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와 이 할머니의 사진이 실린 광고에서 "김 할머니의 마지막 유언은 2차대전 당시 20만 명이 넘는 여성을 상대로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과하라는 것이었다"면서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김 할머니의 마지막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마찬가지로 전범국인) 독일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게 직접적이고 성의있고 명백한 사과를 한 것은 물론 홀로코스트 부인 행위를 위헌으로 규정하고 후세에도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지만 이와 정반대로 일본은 반인권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회피와 부정, 은폐, 역사수정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아베 총리가 연설하는 장소가 미국의 대일 선전포고 직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치욕의 날' 연설을 한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라면서 "아베 총리가 과거의 전쟁범죄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기에 미 의회만큼 더 좋은 곳도 없다"며 공개 사과를 거듭 압박했다.

한편,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도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광고를 게재했다.

광고는 A섹션 국제면(8면) 하단에 '진주만 공격'(Attack on Pearl Harbor)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으며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폭격으로 하와이의 진주만이 검은 연기로 뒤덮인 사진이 배경으로 삽입됐다.

서 교수는 '미국 진주만 폭격을 기억하십니까?'로 시작되는 광고에서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여러 국가에 큰 피해를 줬고, 특히 전 세계의 일본군 위안부에게 아직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베 총리가 미 의회 연설에서 사죄 및 보상 약속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si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