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정부'라고 부를 수 있나?" 대정부 불만 쏟아져

"구호품을 전달해 주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 네팔 수도 카트만두 중심지역에 집이 있지만 이틀째 텐트 생활을 하는 다나 쉬레스타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우리는 외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이 있다고 들었고 기사도 봤다"며 "정부가 지원물자를 나눠줄 수 없다면 그것이 정부인가?"고 물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7일(현지시간) 네팔 정부의 지진 대처 방식에 불만을 표시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같은날 지진도 대재앙이지만 네팔 정부의 허술한 대처방식 또한 또 다른 재앙이라는 논조로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수천명이 사망하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지만 그 규모 파악도 힘들다.

구조·대응 팀은 마을이 통째로 지도상에서 사라져버릴 수 있는 이 나라의 외진 곳에 가서 구조활동을 펴려고 하지만 여전히 '시도 중'일 뿐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자연재해는, 여러 사람이 지적했듯이, 갑자기 떠들썩해지는 게 아니다.

수십년간의 연구 덕분에 네팔이 지진에 얼마나 취약한지 나타났지만 이번의 7.8 강도의 지진에 미리 대비한 것은 거의 없었다.

외부인들에게 네팔은 히말라야 산맥 속의 어느 한 낭만적인 지역으로 각인돼 있다.

수도 카트만두는 옛날 궁전으로 유명한 곳으로, 에베레스트 산과 거대한 산맥의 그림자 속에서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한 폭의 그림같은 이런 풍경 이면에는 지난 20년간 네팔을 뒤흔들었던 광범위하고 충격적인 변화가 숨겨져 있다.

이번에 지진을 일으킨 활성단층과 마찬가지로 네팔 국내에는 매우 불안한 정치적 분열 현상이 존재한다.

1990년대에 일어난 마오(마오쩌둥)주의 봉기는 100년 역사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강고한 인종적·카스트계급적 불평등을 척결하는 데 목표를 뒀다.

이 봉기는 2006년에야 끝났지만 최소한 1만2천명이 살해되고 많은 지역이 황폐화됐다.

유엔이 관리감독한 평화정착 과정은 입헌군주정인 네팔을 연방공화정으로 바꿔놓기 위한 시도였다다.

이후 일부 가시적인 성과도 이어졌다.

마오주의 게릴라들은 정글 속 은신처를 카트만두의 안락한 사무실과 바꿨고 네팔의 다당제 민주주의에서 지분을 갖게 됐다.

새 헌법을 기초하는 의회와 과도정부에 참여하게 됐으며 마침내 2008년에 네팔 왕정이 종식됐다.

2012년에는 마오주의 게릴라의 네팔군 편입이 완료됐다.

하지만 네팔은 지난 10년 동안 국익이 여러 정당들의 분쟁에 볼모로 잡히는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마오주의 세력과 왕당파, 중도 성향의 정당들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연정이 구성되자 마자 해체되는 등 극심한 혼돈이 이어졌다.

이런 정치적 요동 때문에 네팔 경제가 휘청거렸다.

이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포장도로 부족에 이르기까지 사회기반시설이 빈약해졌고 이런 한심한 형편에서 이번 비극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지난 2010년 아이티 지진 사태에서 봤듯이 비정부 국제기구가 정부가 못한 일을 해야 할 형편이다.

능력없고 근시안적인 지도층 때문에 네팔 정치가 제기능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100개의 계급으로 분화되고 여러 인종이 뒤섞여 있는 인구 약 3천만 명의 복잡한 네팔을 재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마오주의자와 다른 정당 사이의 정치적 경계선을 어떻게 변경해 소외 단체를 더 잘 대변할 새로운 연방 체제를 창조할 수 있는지를 놓고 순수 이념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네팔의 정치지도자들이 이상적인 미래를 놓고 다투는 사이 현실은 점차 음울해지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 생계수단을 찾도록 강요받고 있다.

권력분산 방침에도 불구하고 카트만두만이 전망있는 곳으로 부상하고 있다.

수년간 내전으로 인한 불안정성이 그러잖아도 혼잡한 수도로 농촌 주민들이 몰려들도록 부추기고 있다.

한 관계자는 "네팔은 거의 한 도시국가나 마찬가지"라며 "모든 기회가 카트만두에 다 있다.

의료, 교육, 정부 부처 시설 등 모든 것이 다 카트만두에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카트만두를 덮친 지진에 네팔 정부가 대처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신문은 네팔 정부의 대응을 보면 제대로 된 헌법도 없고 선출된 지도자도 없는 가난에 찌든 네팔이 정치적 위기를 오랫동안 방치함으로써 어떤 비용을 치르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오래 전부터 지진학자들은 네팔이 주요 활성단층 위에 올라앉아 있고 80년 전 비슷한 대재앙을 겪은 적이 있어 또 그 같은 지진 참사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해 왔다.

그러나 정치적 내분 등으로 사회간접자본 및 경제 건설을 소홀히 해 왔다.

네팔 경제는 외국 원조와 네팔인들의 해외 송금에 크게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일용 기자 ci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