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1일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회동했다.

미국과 쿠바 정상이 회동한 것은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일으키기 3년 전인 1956년 이후 59년 만이며 1961년 양국이 국교를 단절한 이후 54년 만이다.

두 정상은 이날 정상회의가 열린 컨벤션센터에서 각국 정상들의 연설 순서가 끝난 뒤 인근 소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나란히 앉아 역사적인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리에 앉은 직후 "명백히 역사적인 만남" 이라며 "새로운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쿠바 정부와 쿠바 국민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구시대의 한 장(章)을 넘겨야 한다"며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의지를 강력히 밝혔다.

이에 대해 카스트로 의장은 "쿠바의 인권과 언론의 자유에 관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하면서 "모든 것이 의제가 될 수 있지만 양국 간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기꺼이 오바마 대통령이 표현한 대로 진전을 이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앞서 한 연설에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오바마 대통령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과거 역사를 극복하고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는데 대해 감사한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미국이 쿠바를 억압한 역사를 거론하면서 많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잘못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쿠바에 제재를 가할 때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무런 책임이 없기 때문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카스트로 의장에 앞서 먼저 연설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대쿠바 정책의 변화는 미주 지역에 대한 정책의 전환점이 도래한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는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내가 여기 함께 자리한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냉전이 끝난 지는 오래" 라면서 "솔직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싸움에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카스트로 의장의 1시간 남짓한 연설은 쿠바 국영방송사가 중계했고,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는 연설 전문을 실었다.

미국은 쿠바와 54년만에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으나 여전히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오바마 대통령은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서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진솔하게 대화할 것"이라면서 "카스트로 의장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35개국 정상의 연설 시간은 각 8분으로 할애됐으나 카스트로 의장은 앞서 6차례 OAS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를 들어 "나에게는 48분을 더 줘야 한다"고 농담조로 말해 좌중의 폭소가 터져나왔다.

쿠바는 1948년 결성된 OAS의 창립 회원국이었다가 미국이 금수조치를 한 1962년부터 회원국에서 제외된 뒤 2009년 자격을 회복했으나 그동안 미국의 반대로 정상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두 정상은 10일 회의 개막식장에서 만나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위해 출국하기에 직전 카스트로 의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은 작년 말 역사적인 외교 관계 정상화 조치를 워싱턴과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동시에 발표했다.

미국 국무부는 쿠바를 테러리스트 지원 국가 명단에서 해제하는 것을 최종 검토하고 있고 대사관 재개설을 포함한 외교 정상화 후속 협상을 쿠바 외교부와 진행하고 있다.

두 정상은 2013년 12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추모식장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를 하는 과정에서 카스트로 의장이 "오바마 대통령, 난 카스트로요"라고 인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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