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이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들도 17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로써 AIIB 가입 의사를 밝힌 국가가 30개국을 넘어서게 됐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상보다 많은 국가가 중국이 주도하는 첫 국제금융기구의 창설 멤버가 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지역 개발을 담당하는 국제금융기구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이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가입 여부를 결정해야 할 AIIB와 한국이 이미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있는 ADB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프랑스·독일·이탈리아도 AIIB 참여…미·일 주도 국제 금융질서 '변곡점'
○ADB, 반세기 만에 대항마 만나

중국은 AIIB를 초기 자본금 500억달러를 시작으로 올 연말까지 설립할 계획이다. 사무국을 베이징에 두고 아시아 지역의 사회간접자본(도로, 항만 등 인프라)에 집중 투자하기 위해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10월 동남아시아 국가 순방 때 처음으로 AIIB의 필요성을 역설한 뒤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설립을 공식 선언했다.

국제사회에서 AIIB는 단순한 국제개발은행이 아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국제금융 질서에 중대한 변곡점을 의미한다. 미국과 일본이 공동 최다출자국(15.6%)인 ADB가 설립된 지 반세기 만에 나타난 변화다. AIIB 같은 대규모 국제개발은행이 설립되는 것은 옛 소련의 붕괴 직후인 1991년 동유럽 국가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후 처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AIIB는 중국의 성장전략과 맞물려 있다. 시진핑 정부 들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육해상 실크로드’를 지원하는 자금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육해상 실크로드’란 중국의 중서부 지역과 인접 국가를 하나로 묶어 경제적인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정책이다.

최근 심각한 공급과잉으로 허덕이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활로를 열어주는 데도 AIIB는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고속철 통신 전력 원자재 관련 중국 기업들은 최근 수요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AIIB는 다수의 국가가 출자국으로 참여하는 만큼 인프라 건설 사업을 중국 기업들만 독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AIIB에 참여키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AIIB는 중국의 거부권이 관건

지난해 10월 AIIB 참여를 약속한 인도 몽골 등 21개국을 포함해 현재까지 AIIB 설립 양해각서(MOU)를 맺은 국가는 28개국이다. 이날 참여 의사를 밝힌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을 포함하면 30개국을 훌쩍 넘어선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예상보다 많은 국가가 창설 멤버로 나서 중국 지분이 애초 우려했던 50% 수준에는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국가별 지분이 결정될 때 결과적으로 중국이 거부권 등과 같은 강력한 권한을 가질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요 결정을 할 때 전체 지분의 85%가 찬성해야 하는 만큼 미국(지분 17.69%)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ADB에서는 한 국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은 AIIB의 지배구조가 지나치게 중국으로 쏠릴 수 있다며 주요국 참여에 대해 반대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이날 한국을 방문한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AIIB가 다른 개발은행이 설정했던 높은 지배구조 기준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진형 기자/베이징=김동윤 특파원/워싱턴=장진모 특파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