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이미 IT 선진국이니 이제 개도국처럼 남의 것을 베낄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개척자가 돼야 합니다."

세계 최대 전자결제시스템 회사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벤처투자가인 피터 틸(48)은 25일 오후 삼성동 서울컨벤션에서 열린 특강에서 상당수가 스타트업 및 기업 관계자들로 구성된 청중들에게 이같이 조언했다.

전날 연세대 강연에 이어 두번째로 '더 나은 미래, 제로 투 원이 돼라'라는 주제로 강연한 틸은 "창업하려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은 경쟁이 아닌 독점"이라며 "시장을 공략할 때 큰 회사 혹은 경쟁이 치열한 분야 대신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강연 후 열린 질의응답에서 틸은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의 진행하에 더 구체적인 조언을 건넸다.

틸은 "한국과 같은 IT 선진국에서는 대부분의 발전이 과거에서 일어나 더 이상 발전이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여기서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에서 대만, 일본, 한국을 보면 3국중 한국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보이고 창업 등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며 "지난해 발간한 내 저서 '제로 투 원'도 한국에서 2만5천권이 팔렸는데 이는 미국 등과 인구 대비 비슷하게 팔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에서는 미국이 버티고 있고 뒤에서는 중국이 쫓아오는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해 틸은 "개도국에서는 선진국을 보며 되는 것은 베끼고 안 되는 것은 젖히는 식으로 할 수 있으나 한국과 같은 선진국은 개척자로서 새로운 것을 해야 하니 쉽지 않다"며 "미국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을 환영한다"며 미소를 띠었다.

그는 "실패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으니 이를 견디면서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실리콘밸리는 성공의 역사가 있어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있었고, 한국에도 수십년간 많은 성공 사례가 있었으니 그 패턴이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의 교육열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교육을 대학에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인생을 18년이 아니라 100여년으로 보고 여기서 어떻게 최고의 성과를 낼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요새 ICT 업계 트렌드로 떠오른 핀테크에 대해서도 틸은 다양한 조언을 내놨다.

틸은 "숫자를 다룬다는 면에서 금융, 인터넷, 컴퓨터 등이 엮이는 것은 자연스럽다"며 "하지만 핀테크에서는 독점이 잘 없고 새로운 기술이라는 것도 잘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원래 있던 산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틈새시장을 노려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야 한다"며 "처음부터 인터넷은행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은행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결제시스템을 만드는 등 타깃을 좁게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kamj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