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12일 중의원 시정연설에서는 아베노믹스(경제정책) 때문에 계층 간 사회격차가 커진다는 지적을 반박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또 아베 정치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안보 문제와 개헌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언급하지 않아 의제로 부각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인상을 풍기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연설의 꽤 많은 부분을 여성의 사회활동, 유연 근무 확대, 청년 취업 문제 등에 관한 정부 정책을 설명에 할애하고서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고, 모두가 꿈을 향해 나갈 수 있다.

그런 사회를 함께 만들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노동 유연화 정책에 관해서는 "고령자에게 다양한 취업기회를 제공한다", "낮이 긴 여름에는 아침 일찍부터 일하고 저녁부터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즐긴다"며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했다.

'기회'를 강조한 아베 총리의 화법은 최근 피케티 열풍과 더불어 '격차' 논쟁이 커지는 것을 의식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능가한다'는 명제에 따라 소득 분배의 불평등 문제를 지적한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의 자본'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그가 언론에 출연하거나 도쿄에서 강연하면서 아베노믹스의 근간에 깔린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기대감이 희석되고 있다.

실제로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관방 부(副)장관은 아베 총리가 이날 연설에서 '기회'라는 단어를 6번이나 사용한 것에 관해 최근의 격차 논쟁을 고려한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전했다.

필생의 과업으로 삼은 개헌과 집단자위권에 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것은 긁어 부스럼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개헌에 관해서는 "헌법 개정을 향해 국민적 논의를 심화해 가지 않겠습니까"라고 제안하는 데 그쳤고 '집단자위권'이라는 표현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집단자위권에 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고 개헌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상세히 거론하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신문은 13일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안보 문제와 헌법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이 일종의 '부실'(不實)이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연설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특정비밀보호법을 강행 성립시킨 전례도 있다"며 아베 총리가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 않으면 논의조차 시작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