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후 원유시장 '게임 룰' 변화
커진 원유 변동성 위기이자 기회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설마 유가 반토막 나겠나?…원유DLS로 돈 몰린다

요즘 재테크 시장의 관심이 두 가지 면에서 원유 파생결합증권(DLS)에 몰리고 있다. 하나는 이미 손실 구간인 ‘녹인(knock-in)’이 걸린 원유DLS가 앞으로 얼마나 손실액을 줄일 수 있느냐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현 수준에서 ‘설마 유가가 반토막 나겠느냐’는 생각으로 원유 DLS에 또다시 자금이 몰리고 있다.

앞으로 유가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작년 이후 불과 1년여 만에 60% 가격이 떨어진 원인부터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대부분의 원유 관련 기관이나 금융사는 유가 급락 요인으로 원유 수요 부진을 우선적으로 꼽는다. 세계 경기 부진과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침체로 원유 수요가 대폭 감소해 유가가 급락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설마 유가 반토막 나겠나?…원유DLS로 돈 몰린다

하지만 올해 1월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경제 성장률은 2013년 3.1%에서 작년에는 3.3%로 높아진 것으로 나왔다. 같은 기간 중국 경제성장률도 7.7%에서 7.4%로 소폭 둔화하는 데 그쳤다. 작년 이후 유가 급락이 경기 둔화에 따른 원유 수요 부진 요인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는 뜻이다.

1980년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유가 급락기에 비해 이번에는 원유 공급 측 요인이 더 심하게 가격 변동요인을 자극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국제원유시장은 유가가 급락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 감산으로 가격을 끌어올렸던 ‘게임의 룰’이 정형화돼 있었다. OPEC 회원국 간 결속력을 바탕으로 원유시장 주도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원유시장의 경쟁 여건은 크게 달라졌다. 종전의 게임 룰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하나의 세계로 상징되듯 경제적 측면에서 국경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국경을 전제로 하는 OPEC 같은 시장 카르텔과 유로랜드와 같은 지역주의 움직임이 크게 약화된다.

게임 이론으로 OPEC 회원국 간 결속력이 약해진 시장 여건에서 유가를 떠받치기 위해 감산에 참여한 회원국일수록 손해를 본다. 간단한 예로 범죄 혐의 때문에 ‘A’ ‘B’ 두 용의자가 경찰서에 불려왔다고 하자. 두 용의자 입장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범죄 혐의를 모두 부인하면 경찰서에서 풀려나올 수 있다.

동일한 상황에서 A는 계속 부인하고 B는 시인할 경우 A에게 중형을 때리는 게임의 롤을 정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부인한 A가 오히려 중형을 맞는 결과(pay-off)가 나온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두 용의자는 모두 범죄사실을 불 수밖에 없다. ‘죄수의 딜레마’다. OPEC 회원국 간 결속력이 약화된 여건에서는 다른 회원국을 위해 감산한 회원국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회원국 모두 증산에 참여하게 된다.

원유를 비롯한 국제원자재 시장은 독과점 구조에 가까울 정도로 불완전경쟁 시장이다. 완전경쟁 시장 참가자들은 ‘가격 순응자(price taker)’에 머물지만 불완경경쟁 시장에서는 ‘가격 설정자(price maker)’로 그 지위가 바뀐다. 새로운 시장 참가자의 진출입 여부에 따라 가격은 언제든지 급등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OPEC의 지배력이 높은 원유시장에서 셰일가스 업체와 같은 대형 신규 시장 참가자가 나올 경우 유가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OPEC이 조급한 마음에 종전처럼 감산을 통해 유가를 끌어올리면 원유시장 주도권마저 잃어버리는 악수를 두게 된다. 떠받친 유가에 의해 특별이익이 발생한 셰일가스 업체들이 신기술을 개발해 손익분기점을 대폭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단기적으로 손실을 본다 하더라도 유가가 떨어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원유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는 길이다. 추가 유가 하락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셰일가스 업체들이 시장에서 퇴출하면 다시 확보한 원유시장 주도권을 활용, 감산을 통해 유가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제유가 움직임은 그날그날 재료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하는 ‘워블링 현상(wobbling development)’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워블링이란 ‘크게 동요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종전에 가입했던 원유상품 손실액은 크게 보전되기 힘들겠지만 현 유가 수준에서 원유상품에 새로 가입하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워블링 현상에 노출된 원유상품은 예측치보다 변동성에 투자해야 한다. DLS와 같은 변동성을 감안한 원유상품에 가입해야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주의해야 할 것은 통계기법상 ‘기저 효과’ 때문에 원유DLS에 신규 가입 이후 유가의 절대 하락폭이 크지 않아도 쉽게 녹인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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