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번에 벌인 인질극은 보기 드문 '3자간' 협상이었다는 점에서 IS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IS가 일부러 공작했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요르단과 일본 인질 모두를 억류하고 있었던 데다 공교롭게 IS가 석방을 요구한 테러범이 요르단에 수용됐던 터라, 이들은 교묘하게 이를 이용해 두 나라 정부를 흔들었다.

인질극의 당사자가 1대1 이라면 인질을 잡힌 쪽이 단독으로 협상 전략을 결정할 수 있지만 이번처럼 2대1일 경우엔 이해관계가 꼬이면서 인질범의 협상력이 더 커진다.

이번 사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달 17일 IS에 대처하는 데 2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시점부터 시작했다.

IS는 이 발표 사흘 뒤 수개월째 억류 중이던 일본인 인질 2명이 등장하는 동영상을 유포하면서 몸값으로 2억 달러를 요구했다.

일본이 밝힌 IS 대처 기금과 똑같은 액수를 제시함으로써 인질극의 책임이 마치 일본에 있는 것처럼 전가하려는 술책이었던 셈이다.

IS도 미국과 공조하는 일본이 몸값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IS는 몸값 요구 동영상을 배포한 지 나흘만인 지난달 24일 일본인 인질 2명 중 1명을 살해했다고 밝힌다.

이는 복수의 인질을 잡은 테러단체가 흔히 쓰는 수법이다.

인질 중 일부를 실제로 죽여 살해 협박이 엄포성이 아님을 보여 상대를 공포에 몰아넣으면 협상력이 높아진다.

게다가 인질의 국적이 서방이나 일본과 같은 비(非) 중동권 국가라면 국제적 이목을 더 끌 수 있다.

IS는 그러면서 몸값 요구를 철회하고 요르단에 수감 중인 테러범과 남은 일본인 인질 1명을 교환하자고 협상 조건을 바꾸면서 요르단을 인질극의 수렁으로 끌어들인다.

요르단 역시 IS 공습에 참여한 공군 조종사가 지난해 12월 IS에 생포된 상황이었다.

요르단에선 그렇지 않아도 자국에 수감된 IS 관련 인물과 이 조종사를 교환하는 방법으로 그를 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었다.

IS는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테러범 석방의 교환 조건을 요르단 조종사가 아닌 일본인 인질로 특정했다.

IS의 교묘한 제안에 요르단과 일본은 사실상 손발이 묶이고 말았다.

요르단은 자국 인질을 포기하고 일본인 인질을 먼저 구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일본으로선 요르단의 '결단'을 바라는 것 외엔 별다른 수가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요르단은 이후 테러범 석방 의사를 내비치면서 시간을 끌었지만 결국 1일 0시(현지시간)께 일본인 인질을 살해했다는 동영상을 내보냈다.

IS가 요르단과 일본의 이런 곤란한 관계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IS가 아예 처음부터 포로 석방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게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배포 시점을 볼 때 일본인 인질을 살해한 시점은 '해질녘까지 터키 국경으로 수감자를 데려오라'고 밝힌 지난달 29일 직후인 30일 또는 31일일 공산이 크다.

인질 협상을 성사하려고 했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의사를 보였음에도 별다른 응답없이 인질을 바로 죽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이들이 석방을 요구한 테러범 사지다 알리샤위가 테러조직의 상징적 인물이긴 하지만 그가 벌인 테러가 10년 전 일인데다 IS가 인질을 내 줄만큼 그의 석방이 절실했는지 의문이다.

IS가 일본인 인질을 표면에 내세운 시점(1월20일)이 아베 총리의 2억달러 지원 발표와 맞아떨어지긴 하지만 그보다 닷새 앞인 1월15일 예멘 알카에다(AQAP)가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배후를 자처한 점과도 연관성을 추정해볼 수 있다.

IS와 경쟁 관계인 알카에다는 IS의 위세에 밀리던 상황에서 샤를리 에브도 테러로 전세계적인 주목을 한 번에 자신 쪽으로 돌렸다.

애초부터 인질을 석방할 뜻이 없었던 IS가 11일에 걸친 국제적 인질극을 벌여 알카에다에 잠시 쏠린 '스포트라이트'를 되찾아 오려는 계략일 수 있다는 뜻이다.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