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 남인도양 디에고 가르시아섬서 테러용의자 심문"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영국 영토에서 비밀감옥을 운영하면서 테러용의자들을 심문했다는 부시 행정부 고위 관리의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다.

3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비서실장을 지낸 로런스 윌커슨은 남인도양 소재 영국령인 디에고 가르시아 섬의 군사기지가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용의자들을 심문하는 예비 장소로 활용됐다고 이날 밝혔다.

폴란드, 아프가니스탄,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등지에 설치·운영된 것으로 알려진 CIA 비밀감옥이 영국 영토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부시 행정부 고위 관리가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의 이번 발언은 미국의 '범인 인도'(Rendition) 프로그램에 관여한 CIA 관계자를 포함해 4명의 정보요원에게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윌커슨은 디에고 가르시아 섬이 비밀감옥으로 상시 활용된 것은 아니지만 예비 장소로서 테러용의자 심문에 이용됐다는 사실을 영국 당국이 모르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비밀감옥이 꽉 차거나 위험하고 불안정할 때 디에고 가르시아 섬이 '환승지역'으로 이용됐다"며 "누구도 그 섬에 구금시설이 있다고 말하거나 드러낸 적은 없지만, 정보요원들은 그곳에서 심문이 이뤄졌음을 시사했다"고 덧붙였다.

디에고 가르시아 섬은 '범죄행위'를 위한 예비장소로 활용됐으며 한 번에 몇주 동안 사용됐다고 윌커슨은 전했다.

앞서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지난달 공개된 미 상원 정보위원회의 CIA 고문보고서에 디에고 가르시아 섬이 '영국의 완전한 협조' 아래 범인인도 프로그램에 활용됐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하지만 500여 쪽 분량의 CIA 고문보고서 요약본은 비밀감옥 위치가 전부 편집된 상태로 공개됐다.

데이비드 밀리반드 전 영국 외무장관은 테러용의자를 태운 CIA 수송기가 2002년 재급유를 위해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 착륙했다는 사실을 2008년에 인정했지만 어떤 용의자도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 당시 영국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나 잭 스트로 전 외무장관도 디에고 가르시아 섬이 범인인도 프로그램에 이용됐다는 사실을 모두 부인해왔다.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jylee2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