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살해 혐의' 백인 경관 불기소에 들끓는 뉴욕 시민들
미국 뉴욕시 대배심이 흑인 에릭 가너(43)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목을 조르다 숨지게 한 백인 경찰관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린 데 항의하는 뉴욕 시민 수천여명이 이틀째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DC 시카고 보스턴 피츠버그 볼티모어 등에서도 동조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4일(현지시간) 경찰을 재교육하고 수사 관행을 개선하겠다며 격앙된 민심을 가라앉히는 데 주력했지만 미국인의 공분은 전국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3000~4000명에 달하는 뉴욕 시위대는 이날 시청 앞에 결집해 ‘정의 없이 평화 없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대배심은 사기다’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를 흔들면서 밤새 시위를 벌였다.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백인 경찰관의 총격으로 사망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떠올리게 하는 “총 쏘지 마!”라는 구호도 끊이지 않았다. 시위대는 차로를 점령하고 행진을 벌였지만 경찰이 적극적인 해산에 나서지 않으면서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워싱턴에서는 100여명의 시위대가 백악관 근처에 세워진 성탄절 트리 주변에서 드러누운 채 인종 차별과 불기소 처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위 확산에 대해 “인종과 지역, 신념을 넘어서는 미국 전체의 문제”라고 말했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지역사회가 경찰을 신뢰하려면 투명성과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며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남용을 비판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이날 보스턴에서 열린 매사추세츠 여성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뉴욕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과 관련해 “사실상 형사사법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이런 비극이 우리가 다시 하나가 돼 균형을 찾는 기회로 작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흑인 인권운동가 20여명은 오는 13일 워싱턴DC에서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고 예고하면서 ‘퍼거슨 사태’와 ‘에릭 가너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를 임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뉴욕 순찰경찰관노조 측은 이날 가너를 목 조르기로 제압한 대니얼 판탈레오 경찰관의 대응은 적절했고 경찰관의 올바른 행동 모델이었다고 강조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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