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 프리랜서 기자 kimjeonguk.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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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최근 임신부 배 속의 아이를 3차원(3D) 프린터로 재현한 조형물(사진)이 인기를 끌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 생김새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아기 조형물을 구매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처음 제공한 회사는 3차원 인체 모형 제작업체인 파소텍. 원래 컴퓨터디자인(CAD) 설계를 기반으로 공산품을 만들었지만 5년 전 의료 분야에 새로 진출했다. 지난 28일 도쿄 중심부에서 차로 40여분 떨어진 지바현에 있는 이 회사를 찾았다. 파소텍은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의료진단장비로 촬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모형 뼈와 장기를 만드는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肝 만지자 물컹한 느낌 그대로…日 의료현장 3D 프린터 '혁명'
파소텍에서 장기 모형을 공급받은 병원 의사들은 이를 이용해 실전과 같은 수술 예행 연습을 하고 있다. 회사 측은 지난해 예행 연습을 거친 200건의 고난도 수술 중 의료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메디컬엔지니어링센터 사업추진·프로모션담당 기노시타 도모히로는 “미국 내 연간 의료사고 사망자율(0.4%)을 일본에 적용하면 약 4만8000명이 의료 사고로 사망한다”며 “수술 전 환자 장기와 똑같은 모형으로 예행 연습을 하면 의료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소텍이 만든 장기는 ‘다빈치’(로봇 팔을 넣어 사용하는 수술기기) 같은 새로운 의료 장비의 테스트에도 활용된다. 3D 프린터가 동물이나 인형을 대신해 의료 현장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기노시타가 설명하는 동안 의료용 쟁반에 담긴 모형 간이 전해졌다. 손으로 만지고 눌러보자 약간 물컹한 것이 ‘이게 간의 느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뼈와 건조된 상태의 장기는 올 들어 이미 병원과 의과대학 등에 공급되고 있다. 내년에는 장기의 질감과 촉감까지 재현한 폐와 간 등의 판매에 들어간다. 가격은 장기 크기나 난이도에 따라 다르지만 1만5000엔 정도다. 밖에는 실제 3D 프린터가 작동 중이었다. 기노시타는 “프린트 잉크 역할을 하는 소재가 0.016㎜ 정도로 얇게 쌓이면서 모형이 만들어진다”며 “밤에 퇴근할 때 작동시켜 놓고 가면 다음날 출근할 때 만들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3D 프린터의 활용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2006년부터 자동차 모형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본격 이용되기 시작한 후 최근에는 의료, 문화·예술 분야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일본 내에서는 3D 프린터를 이용한 인공 뼈 상용화도 진행 중이다. 의료기술 개발 업체인 넥스트21과 도쿄대부속병원 등이 공동 개발한 ‘맞춤형 인공 뼈’는 내년 상용화될 예정이다. 3D 프린터로 만든 인공 뼈를 이식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뼈로 굳게 된다.

파소텍의 성장 이면에는 건강·의료 등 최첨단 산업에 대한 지바현의 지원도 있었다. 지바현은 지바대, 도쿄대 가시와캠퍼스, 국립암연구센터 등 7개에 달하는 대학 및 연구소 등 학계와 ‘모노즈쿠리(최고 제품 만들기)’ 중소기업 간 제휴를 통해 의료산업 혁신에 나서고 있다. 다카하시 도시유키 지바현 산업진흥과장은 “파소텍과 같은 기업을 육성·지원하기 위해 1400만엔의 예산을 책정하고 지난 5월부터 의료 현장이 요구하는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코디네이터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서정환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