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혹’ > 이라크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반군이 지난 14일 북부 도시 티크리트의 군사기지에서 평상복을 입은 정부군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ISIS는 이날 1700명의 정부군을 처형했다고 주장하면서 웹사이트에 관련 사진을 올렸다. 티크리트AP연합뉴스
< ‘참혹’ > 이라크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반군이 지난 14일 북부 도시 티크리트의 군사기지에서 평상복을 입은 정부군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ISIS는 이날 1700명의 정부군을 처형했다고 주장하면서 웹사이트에 관련 사진을 올렸다. 티크리트AP연합뉴스
이라크 내전이 이슬람 종파 간 살육전 양상으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각국은 대사관 철수 준비와 함께 대피령을 내리는 등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일단 즉각적인 군사 개입보다는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이라크 반군, 1700명 처형 주장

16일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에 따르면 이라크 반군세력인 이슬람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는 이라크 정부군 1700명을 처형했다고 주장하며 수십명이 끌려가거나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이 담긴 사진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사진은 20~60명씩 손이 뒤로 묶여 처형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끌려가거나 머리에 피를 흘리며 땅에 엎드린 모습 등을 담고 있다. CNN은 사진이 살라후딘주의 티크리트 등 반군이 장악한 지역 5곳 이상에서 찍힌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ISIS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로 1400명의 반군을 살해한 것을 뛰어넘는 근래 최악의 학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정부 측은 처형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숫자는 파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NYT는 이번 대학살이 ISIS에 맞서는 이슬람 시아파의 보복 공격을 불러 사태를 대량학살전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라크 정부군도 하루 사이 반군 무장세력 297명을 사살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또 시리아 정부군이 이라크 정부와 공조해 ISIS의 주요 기지를 24시간 공격하고 있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이날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수도 바그다드 북쪽 100여㎞ 부근에 형성된 전선을 두고 양측의 대치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각국 대피령…대사관 철수 움직임

바그다드에서는 15일(현지시간) 시내 중심가 등에서 시아파를 겨냥한 것으로 추정되는 폭탄테러가 연달아 발생해 15명이 숨지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식료품 가격이 폭등하고 검문검색이 강화되면서 음울한 분위기라고 AP통신은 전했다.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도 경비를 강화하고 대사관 인력 상당수를 조만간 요르단 암만 등 인근 지역으로 대피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도 16일 자국민에게 이라크에서 철수할 것을 명령하는 등 각국이 대피령을 내리고 있다. 한국 정부도 현지에 진출한 기업 주재원과 동포를 안전지역으로 대피시켰으며, 유사시 미리 세운 계획에 따라 해외로 철수시킨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지 체류 중인 국민은 20개 기업과 60개 협력업체 직원 등 1300여명”이라며 “모두 교전이 없는, 치안이 안전한 곳에 대피해 있다”고 전했다.

○미, 즉각 공습 나서진 않을 듯

미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항공모함과 순항미사일을 장착한 구축함 등을 걸프만으로 급파했지만 즉각적인 공습엔 나서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신들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일 캘리포니아 휴양지 팜스프링의 한 골프장에서 이라크 사태 브리핑을 받은 뒤 참모들과 라운딩했다.

이라크 사태 해결을 위해 미국과 협상 중인 이란 정부도 “외국의 이라크 군사 개입은 오히려 위기상황을 복잡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같은 시아파로서 이라크 알 말라키 정권을 지지하는 이란은 조만간 사태 해결을 위해 미국과 당국자 간 직접 대화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 NYT는 미국 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이라크 종파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정치적 해법이 전제돼야 오바마 대통령이 최종 결단을 내려 공습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관리는 “말라키 이라크 총리 측이 (반군세력인) 수니파와 쿠르드 정파의 인사를 아우르는 새로운 통합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이심기/전예진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