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비중 과다로 부작용 우려
국민연금 오랜만에 제기능 충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윔블던 현상' 방파제…국민연금이 달라졌다

올 들어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한 신흥국 증시에서 외국인의 향방이 최대 화두다. 특히 한국처럼 ‘윔블던 현상’이 심한 나라에서는 외국인에 의해 주가와 환율 움직임이 좌우되는 정도가 크다.

윔블던 현상이란 윔블던 테니스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사례에서 유래된 용어다. 증시를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이 주인인 한국인보다 외국인에 의해 주도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은 외국인 비중이 높거나 외자선호정책을 운영할 때, 외국인 혹은 외국 금융사 경험 인력을 우대할 때, 또는 투자 시 참고지표가 적을수록 심하게 나타난다.

윔블던 현상이 강해진다고 해서 반드시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발전 단계에 비해 윔블던 현상이 심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크게 우려돼 왔고, 실제로 그렇게 나타났다. 무엇보다 외국 자본이 우리 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해 나타나는 국부 유출, 즉 국민이 애써 모은 재산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이 문제다.

경제정책도 무력화된다. 외국 자본이 수익을 우선시함에 따라 정부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외국 자본이 확대된 만큼 한국 경제 주권이 약화된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윔블던 효과가 심한 국가를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신탁 통치국’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글로벌 펀드들이 벌처펀드(일종의 사모펀드)형 투자,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추세가 심해짐에 따라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정도는 더 강하다. 국내 기업과 금융사의 경우 외국인 비중이 높아 언제든 M&A에 노출돼 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윔블던 현상' 방파제…국민연금이 달라졌다

한국처럼 역기능이 더 우려되는 상황에서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태동할 국제금융질서의 중심국이 되기 위한 각종 금융허브 과제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기가 어렵다. 외국인에게 적대적 감정이 있는 국가에 속한 기업과 금융사가 추진하는 글로벌 과제도 역으로 투자대상국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중장기 투자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은 더욱 어렵다. 오히려 외국인 향방과 재료에 따라 주가와 투자성과가 좌우되는 ‘천수답 장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와 국민 입장에서도 윔블던 현상이 줄어들지 않으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증시가 활성화되지 못해 자금 조달과 재산 증식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

윔블던 현상과 이에 따른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자 국민연금의 태도가 최근 확실히 달라졌다. 한마디로 윔블던 현상 방지를 위해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벌써부터 외국인은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높아져 한국 증시에서 이제 예전만큼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실토한다.

국민연금의 이런 노력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책당국도 외자정책 등 관련 정책을 대폭 정비해야 한다.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 외국 금융사와 국내 금융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외국’이면 아직도 우대하는 역차별 문제를 개선하고, 오히려 한국 경제의 공생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를 주도적으로 따져 추진할 때가 됐다.

나아가 국내 기관투자가와 자본 육성,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등에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 방안 중 국민연금의 독립성 전문성 안정성을 키워 그 역할을 확대하고 강화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 판단된다.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과 관련된 논쟁은 이 점에 최우선 순위를 둬 결론을 내려야 한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자 대처 방안으로 종전의 △유입 외자를 사들이는 태화 개입 △유입 외자를 사들이되 풀리는 국내 여신을 흡수하는 불태화 개입 등은 한계가 있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등으로 이제는 외환 사정이 문제가 될 정도로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입을 전제로 IMF가 권고한 ‘영구적 불태화 개입(PSI)’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PSI란 국부펀드 등을 통해 유입 외자에 상응하는 해외자산을 사들여 주식시장(조만간 채권과 부동산시장에서도 문제)에서 윔블던 현상을 줄이고 외환시장에서 쏠림현상에 따른 원화절상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다. 한국은 국민연금이 국부펀드의 역할을 대신할 경우 당장이라도 그 어느 국가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투자자들도 자기만의 독특한 참고지표를 만들어 투자해야 한다. 참고지표가 많아질수록 투자 주권을 지키는 길이다. 글로벌시대에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인 사고방식은 지양해야겠지만 경제가 어려울 때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된다는 애국적인 사고와 자세를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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