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치솟는 원화값, 빨간불 켜졌다
세월호 참사가 부른 사회 전반의 무기력증 속에 치러진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오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30대 그룹 사장단과 ‘정상적 경제활동 복귀를 위한 모임’을 갖는다. 가라앉는 내수 경기에다 좀체 활기를 되찾지 못하는 경제 흐름을 바꾸기 위해 대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경영 활동에 나서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최근 두 달 가까이 기업들은 아예 입을 닫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무서움을 아는지라, 오직 사업장에서 안전 사고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냈다. 세월호 피해 성금을 내는 것조차, 혹시나 ‘생색내려 한다’는 얘기를 들을까 시점을 놓고 눈치를 봐야 했다. 경제 5단체장이 따로 모임을 갖고 재계 차원의 성금을 모으겠다고 발표한 뒤에야 기업들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달려갔다.

홀로 속앓이하는 한국 기업

거의 모두가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그 사이 달러당 원화 환율은 1020원 언저리까지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며 수출로 먹고사는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예전 같으면 ‘이대로 괜찮은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을 법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업들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 탓이다.

최근 만난 대기업 최고경영자는 환율 하락 흐름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금 환율 수준에선 웬만한 대기업들도 ‘헉헉댄다’고 했다.

올해 사업계획을 짤 때 기준환율을 달러당 1050원으로 잡았다는 그는 “지금 유럽에서 중국산 제품보다 10% 정도 값을 더 받는데, 판매가격을 더 올려서 환율 하락에 따른 매출 손실을 메우는 것은 자살 행위”라고 말했다. 현지 거래처들이 중국산과의 가격 차이가 15%까지 벌어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수출 중견·중소기업들을 걱정했다. 세월호 쇼크에 묻혀 있지만, 이미 많은 수출 중소기업들이 고사 위기에 몰리는 것으로 그는 판단했다.

요즘 대기업들의 공장 신·증설은 주로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같은 ‘제조업 드레인(고갈)’ 현상은 모두에게 큰 걱정거리다. 좋은 일자리가 빠져나가는 데다 성장잠재력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엔고가 빚은 日기업 해외 이전

1985년 플라자합의 후 급격한 엔고(엔화가치 상승)를 경험한 일본 사례는 제조업 드레인 측면에서도 시사점을 던진다. 권오경 일본 나가오카대 교수는 한 보고서에서 과거 엔고가 일본 수출기업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또 노동집약적 산업의 위기, 중소 제조업의 고사 및 지방경제 퇴락 등이 엔고를 통해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제조업 드레인은 일본과 달리 생산성을 못 따라가는 인건비 상승, 꽉 막힌 규제 환경, 그리고 현지화를 통한 시장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일본 사례를 보면 기업들이 느끼는 환율 위기를 방치하면 언제든 공장 해외 이전을 부추길 요인으로 떠오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한국이 경상 흑자를 위해 환율을 끌어올리려 한다고 압박을 가했다. 일본 아베노믹스의 핵심 중 하나는 확실한 엔저 실현이다. 치열한 글로벌 환율 전쟁의 단면들이다. 원고(高)에 신음하는 수출 기업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김수언 산업부 차장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