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증시 환율 쇼크…'환투기·핫머니 성격' 짙다
연초에 이어 국내 증시에 ‘환율 쇼크’가 우려되고 있다. 최근 원화 절상은 주변국의 정책 요인이 강하고, 그 어느 때보다 환차익을 겨냥한 핫머니 성격이 짙은 점이 종전과 다르다. 또 미국 달러화뿐만 아니라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등 주변 3대 경제강국 통화에 대해 모두 원화 가치가 절상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오바마 정부는 집권 2기에 들어서도 달러 약세 정책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경기회복과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추진에도 달러 평가지수는 오히려 ‘80’ 밑으로 떨어졌다. 미국은 고용 창출 등을 위해 유로화와 신흥국 통화에 대해서는 달러 약세, 엔화에 대해서는 달러 강세를 용인하는 이원적 전략(two track)으로 수출업체에 경쟁력을 보완해주고 있다.

아베 정부도 발권력을 동원해 엔저 정책을 추진한 지 1년3개월이 넘었다. 기대했던 효과가 약하게 나타나자 ‘2차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를 추진할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시기적으로 3월 말 회계연도 결산이 끝나자 일본에 유입됐던 외국 자금과 와타나베 부인이 주도하는 엔캐리 자금이 떠나갈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엔화 약세를 지속시키는 요인이다.

시진핑 정부도 올해 2월 이후 수출이 급감하자 위안화 절하를 유도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당초 6월에 계획된 하루 환율 변동폭 확대(±1%→±2%)를 지난달 17일로 앞당겨 추진한 것이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준다. 부동산 거품 등을 잡기 위한 정책효과를 약화시키는 핫머니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위안화가 절하되는 것이 유리하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과 일본, 중국 간에 환율을 놓고 미묘한 갈등관계가 심해지고 있는 점이다. 집권 2기에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을 추진하는 오바마 정부가 군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베 정부에 집단적 자위권을 주는 대신 엔저를 묵시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진핑 정부는 위안화 절하로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흥국 통화가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증시 환율 쇼크…'환투기·핫머니 성격' 짙다
경제대국의 정책요인으로 불리해질 때는 정책적으로 맞대응하는 게 부작용이 적으나 한국은 이 점에서는 자충수에 걸려 있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당시 심했던 국제수지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소득 대비 4%를 웃도는 경상 흑자국은 인위적인 평가절하 등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합의했다.

하지만 작년 우리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6%에 달했다. 이달과 다음달에 걸쳐 G20 회담, 미국 재무부 반기 환율 보고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 등을 감안하면 원화 절상을 막기 위한 시장개입은 국제사회에서 명분이 약하다. 환율방어를 위해 잇달아 외평기금을 조달·운용한 결과 시장개입 비용도 급증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최근 국내 증시에 집중적으로 들어오는 외국 자금은 기존 원화표시 채권에 투자했던 외국 금융사들의 차익실현을 겨냥한 성격도 강하다는 점이다. 올 들어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외국 금융사들이 금리 인하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갈수록 금리 인하에 따른 자본이득 여지가 줄자 원화 강세를 촉발시켜 환차익으로 보전하려는 숨은 의도도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흐름에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순응성(procyclicality)’이 심해져 쏠림 현상이 정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순응성이란 환율이 하락할 때 더 하락(오버슈팅·overshooting)하고, 상승할 때 더 상승(언더슈팅·undershooting)하는 현상을 말한다. 환율 변동성을 확대하고 단기적으로 환차익을 더 크게 할 소지를 제공한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좀 더 지켜보자’는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같은 소극적이고 방관자적인 자세로는 안 된다. 미국 등 중심 3국이 자국 통화 약세를 유도하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시장개입에 따른 마찰 부담도 적다. 글로벌 이익과 자국 이익이 충돌할 때는 자국의 이득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대외경제정책 방향이다.

현 시점에서 원화 절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가장 확실한 방안이지만 대내외 여건상 여의치 못하면 ‘태환 개입(unsterilized intervention)’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 물가가 안정돼 있고 부동산 등 국내 자산시장과 체감경기가 안 좋은 여건에서는 달러 개입을 통해 풀린 유동성이 부작용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있으나 토빈세 부과뿐 아니라 선진국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 유입의 대처 방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영구적 불태화 개입(PSI·permanent sterilized intervention)’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PSI는 국부펀드 등을 통해 유입 외자에 상응하는 해외 자산을 사들여 통화 가치의 균형을 맞추는 방안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