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3차 핵안보정상회의 중요계기로 부상
'시일 촉박'·한일 양국 내부 상황도 변수


미국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역대 총리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겠다고 발언한 이후 한일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 여부에 촉각을 세웠다.

특히 다음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과 일본 방문을 앞두고 양국관계 개선을 강하게 압박해온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서울과 도쿄(東京)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나름 긍정적인 쪽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종전 50주년과 60주년을 기념하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小泉) 담화 등을 거론하며 "아베 내각은 이들 담화를 포함해 역사인식과 관련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서 계승한다"고 말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이지만 그동안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부 우익인사들을 중심으로 '고노 담화의 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일본 정부내에서도 호응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아베 총리의 발언은 시의성이 있어 보인다.

아베 총리의 '계승 발언'이 현실화되기까지 미국 정부는 일본의 조야를 상대로 상당한 설득과 압박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또 한국에서도 '아베 발언'에 대해 환영의 반응이 나온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지금이라도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본 정부 및 정치지도자의 언행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과 도쿄의 움직임이 미국이 원하는 쪽으로 진행되는 만큼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취임후 처음으로 정상적인 대화를 할 가능성에 눈길이 쏠린다.

특히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미국 내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오바마 대통령까지 가세하는 한미일 정상회담이라는 대형 이벤트까지 거론되고 있다.

미국 정부내 흐름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한미일 정상회담이 연출될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무부는 14일 아베 발언과 관련해 연합뉴스가 논평을 요구하자 "(과거사와 관련한) 무라야마 총리와 고노 전 관방장관의 사과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일본의 노력에 있어 중요한 장(章)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환영의 뜻을 표한 뒤 "아베 총리의 발언을 긍정적 진전으로 간주한다"고 평가했다.

국무부는 "한국과 일본의 좋은 관계는 두 나라 자체는 물론 지역과 미국에 있어서도 최선의 이익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핵안보정상회의 개막까지 열흘도 채 남지 않아 세부 의제 및 일정 조율이 촉박한데다 한일 양국 내부의 상황이 유동적인 점이 변수가 되고 있다.

한 소식통은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책임있는 당국자들은 신중한 행보를 하고 있다"면서 "내달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이전까지 이런 행보는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우탁 특파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