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총리, '대선 포기·총리 연임설' 부인

터키 사상 최대 비리사건 여파로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 지지율이 단독정부를 구성할 수 없는 수준까지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지율 하락에 따라 3기 연속 집권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8월에 치르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내년 총선에 다시 출마해 총리직을 연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터키 유력 여론조사업체인 손라의 1월 조사결과 정의개발당 지지율이 42.3%로 1위를 유지했으나 의석수 과반을 차지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라고 현지 언론들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터키 국회의원은 지역구별로 선출하나 정당별 득표율로 의석수를 정하는 비례대표 방식을 혼용해 전국 득표율 10% 미만인 정당의 득표는 무효로 처리하고 의석수를 배정한다.

정의개발당에 이어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이 29.8%로 2위를 차지했고 제2야당인 민족주의행동당(MHP)은 18.7%, 쿠르드계 정당인 평화민주당은 5.6%로 각각 조사됐다.

정의개발당 지지율은 2012년 2월에는 53.2%였으나 같은 해 11월 47.3%로 떨어지고 지난해 7월 44.1%까지 밀렸으며 올해 1월에는 42%대로 내려섰다.

반면 공화인민당은 2012년 2월 19.8%에 그쳤으나 2012년 11월 25.1%, 지난해 7월 28.2%, 올해 1월 29.8% 등으로 상대적으로 급등세를 보였다.

에르도안 총리가 2001년 8월에 창당한 정의개발당은 2002년 11월 조기총선에서 득표율 34%로 의석수 550석 가운데 360석을 차지해 이슬람계 정당으로서 사상 처음 단독정부를 구성했다.

다만 에르도안 총리는 1999년 이슬람 선동 혐의로 복역한 전력으로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당해 다수당 대표였지만 총리 후보로 나가지 못했고 2003년 9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지금까지 총리직을 맡고 있다.

정의개발당은 2007년 7월 총선에서는 46%의 득표율로 340석을 얻었고 2011년 6월 총선에서도 49.83%의 지지율로 326석을 차지해 3기 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말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에르도안 총리의 독재적 통치에 반발하는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지난달 17일 장관 3명의 아들 등이 체포되는 비리사건 수사로 지지층이 이탈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에르도안 총리가 8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내년에 예정된 총선에 나서거나 조기총선을 실시해 총리를 연임할 가능성이 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터키는 2007년 대통령을 국민투표에서 절대과반수로 선출하고 7년 단임에서 5년 연임제로 바꾸는 등의 헌법을 개정한 바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자신이 주도해 만든 정의개발당 당규에서 의원을 3연임으로 제한해 내년 총선에 나가지 않고 올해 대선에 출마한다는 구상이었으나 최근 지지율 하락으로 절대과반수 득표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의개발당에서 3연임한 의원이 70여명으로 당 내부에서도 연임 제한 규정을 바꾸자는 여론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규정에 따라 내년 총선에 출마할 수 없는 장관들은 오는 3월 31일 예정된 지방선거 후보로 나서서 개각이 이뤄지기도 했다.

덴기르 프라트 전 정의개발당 의원은 최근 일간지 자만과 인터뷰에서 "에르도안 총리가 대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총리를 계속하고자 이 규정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만은 당규 개정은 당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정사항으로 연속 4선 출마를 금지한 당규는 48시간 만에 바꿀 수 있다며 3월 지방선거의 결과에 따라 개정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진단했다.

공화인민당은 지방선거 승패의 가늠자인 이스탄불 시장 후보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무스타파 사르귤 이스탄불 시실리 구청장을 영입해 정의개발당과 일전을 예고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지난 4일자에서 정의개발당이 3월 선거에서 이스탄불을 야당에 내준다면 8월 대선의 승리를 자신할 수 없어 조기총선을 치르거나 대선후보로 압둘라 귤 현 대통령을 지명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다만 에르도안 총리는 이런 관측과 관련해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4선 연속 출마 제한 규정을 바꿀 계획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규정 개정과 관련한 질문에 "이번이 나의 세 번째 임기이고 정의개발당 의원 가운데 많은 이들도 같은 상황"이라며 "우리 당의 당규에 따르면 이번 의원직은 이번 임기에서 끝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치인들은 세번 연임했으면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준억 특파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