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중때 `무게감있게' 거론안된 듯…일본선 '위기관리' 거론
"확전해봐야 득될것 없어" 판단…KADIZ 국내논의에 영향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ADIZ) 설정을 놓고 강경 태도를 보이던 미국이 조심스럽게 수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초 이번 사태를 '도발 행위'라고까지 규정하며 중국 측의 ADIZ 철회를 요구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서로 갈등을 자제하자는 쪽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4일 베이징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동했으나 이번 사태가 '무게감있게' 거론되지는 않은 분위기다.

미국 정부당국자들은 "중국의 ADIZ를 불인정한다는 입장과 함께 깊은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으나 강도는 예상보다 낮았다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이번 사태를 놓고는 서로의 입장 만을 확인하는 선에 그치고 주로 '신형 대국관계'를 중심으로 세계평화와 역내 안정문제를 포괄적으로 거론하는데 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부통령을 통해 미국의 직접적 우려를 전달하고 해명을 요구할 것이라던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백악관 고위당국자의 예고와는 사뭇 달라진 기류다.

'위기관리체계'를 화두로 꺼내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바이든 부통령은 일본 방문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중일간 위기관리 체제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대화'를 강조한바 있다.

위기관리체계는 역내 갈등이 무력충돌과 같은 극단적 분쟁행위로 비화되는 것을 막는 '제도적 틀'을 의미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 '실체'를 가진 구상인지 불분명하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현재 역내 갈등구도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실현가능성도 장담하기 힘들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위기관리를 거론한 것 자체가 미국의 미묘한 태도변화를 시사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계기로 촉발된 역내 갈등을 어떤 식으로든 봉합해보려는 '중재카드'의 성격이 짙다는게 지배적 시각이다.

이는 바꿔말해 미국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선에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실적으로 중국이 이미 선포한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철회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데다 현 상태에서 중국과의 확전을 꾀해봐야 득될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은 지난 6월 미·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중국과의 '신형 대국관계'를 적극 모색하고 있는 단계다.

따라서 이번 사태로 인해 중국과의 근본적 관계를 틀기보다는 전략적 협력의 외연을 넓히는 쪽으로 외교역량을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자들은 중국이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철회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며 "바이든의 메시지는 중국이 공격적인 군사적 행동 또는 휘발성있는 수사를 사용하지 않도록 자제할 것을 설득하는데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 2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이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던 입장과는 확연히 달라진 측면이 있어 보인다.

워싱턴 외교전문가들도 대체로 미국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

더글라스 팔 카네기평화재단 부회장은 "역내 지도자들로부터 '군사력 사용을 통한 갈등 고조를 자제한다'는 보증을 이끌어내는게 보다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미국의 미묘한 기류변화는 자체적으로 방공식별구역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정책기조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ADIZ를 둘러싼 갈등을 적절히 봉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 확대문제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표명할 지는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이런 기류 속에서 한국 정부도 KADIZ 확대 결정을 이번 주 마무리되는 바이든 부통령의 동북아순방 이후로 미뤄놓은 상태다.

만일 미·중 양국이 바이든 순방을 통해 확전을 자제하는 쪽으로 컨센서스를 형성한다면 한국으로서는 이를 당장 추진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KADIZ 확대 추진시기를 늦추는 식으로 속도조절을 꾀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 정부의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에는 이번 사건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워싱턴DC 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KADIZ 확대 문제에 대해) 좀 더 내용을 검토한 후에 앞으로의 잠재적 방공식별구역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 대해 ADIZ 철회를 요구하지 않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응기조를 놓고 비판적 목소리도 대두되고 있다.

제임스 인호프(공화·오클라호마) 상원의원은 워싱턴 지역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을 달래기 위해 안보동맹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원 군사위원회의 하워드 매키언 위원장은 ADIZ 설정을 "중국의 약자 괴롭히기(bullying)"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