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동북아 순방으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대한 미국의 대응책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핵심은 ‘위기관리체계의 구축’으로 모아진다. 돌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신뢰의 틀을 구축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구상이다. 어느 한 국가의 손을 들어주기 힘든 현실을 고려한 일종의 타협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3일 바이든 부통령과의 회담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대해 “미국과 일본의 동맹에 기반해 계속 긴밀하게 협조해 대응하기로 뜻을 모았다”며 “지역의 평화·안전을 위해 중국이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것을 묵인할 수 없다는 점을 서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미·일이 힘을 합쳐 중국에 대항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속내는 일본의 해석과 다르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행정부의 의중이 중국을 압박해 갈등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보다 ‘봉합’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지적이다.

바이든 부통령은 3일 아사히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도 “(중·일) 양국이 위기관리 및 신뢰 구축을 위한 제반 조치 확립에 합의할 필요가 명확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 양쪽 모두에 위기관리 메커니즘 구축을 제안하겠다는 메시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익명의 미 행정부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해 “바이든 부통령의 메시지는 미국 정부가 긴장을 완화하고 사태 악화나 오판의 위험을 줄이려고 위기관리체계와 신뢰구축 조처를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중국과 일본 역시 위기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중국 탕자쉬안 전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전·현직 일본 의원들과 만나 방공식별구역에서 쌍방 군용기 간 예기치 않은 충돌사태를 피하기 위해 공중 위기관리 체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일본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관련 돌발사태를 막기 위한 중·일 간 ‘핫라인’의 필요성을 누차 거론해 왔다.

관심의 초점은 바이든 부통령의 이번 방문이 어느 정도의 실질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모아지고 있다. 아직은 중·일 양국 정부 모두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서다. 중국 외교부는 연일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라’며 일본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4일 출범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일본판 NSC)의 첫 현안으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 문제를 논의하겠다며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일본은 이번 회담을 통해 중국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대해 미국과의 강력한 공조를 확인했다는 입장이지만, 바이든 부통령이 중국 방문에서도 이런 태도를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2일 밤 일본에 도착한 바이든 부통령은 3일 아베 총리와 회동한 뒤 4~5일 베이징을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과 만날 예정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