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정부는 2010년부터 피터버러교도소 수형자들을 대상으로 ‘재범률 줄이기 SIB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한 SIB 대
상자(오른쪽)가 멘토와 상담하는 모습. 소셜파이낸스 제공
영국정부는 2010년부터 피터버러교도소 수형자들을 대상으로 ‘재범률 줄이기 SIB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한 SIB 대 상자(오른쪽)가 멘토와 상담하는 모습. 소셜파이낸스 제공
영국인 브라이언(56)이 처음 술을 접한 건 그의 나이 13세 때였다. 브라이언은 서서히 알코올에 중독 됐고, 10여년 전부터는 노숙인 신세가 됐다.

법원은 ‘공공장소 음주 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집 없는 알코올중독자’가 맥주 캔을 딸 곳은 공원 아니면 길거리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브라이언은 경찰에 연행됐고, 법정에 섰고, 피터버러 교도소에 갇혔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심지어 건강까지 챙겨주는 교도소는 그에겐 길거리보다 한결 안락한 ‘쉼터’였다.

브라이언이 교도소에서 ‘편안한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영국 정부의 주름살은 늘었다. 범죄자 한 명을 1년 동안 옥살이시키는 데 평균 5만파운드(약 8600만원)가 들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에 ‘범죄자 수를 줄인다’는 의미는 ‘안전 사회 구현’이란 방범 이슈를 넘어 ‘세금 지출 감소’란 돈이 걸린 문제였다.

전세계 1호 사회성과연계채권(SIB)이 교도소에서 나오게 된 배경이다. SIB란 정책과제를 위탁받은 민간업체가 목표를 달성했을 때만 정부가 ‘사업비+이자’를 주되 실패하면 한푼도 안주는 성과급 형태의 계약이다. 사업비는 민간투자로 조달한다.

피터버러 교도소 SIB 프로그램 운영업체인 소셜파이낸스의 제인 뉴먼 인터내셔널 디렉터는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재정 압박은 ‘이론’에 머물렀던 SIB를 ‘현실’로 만든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사회문제·세수 부족, ‘두 마리 토끼’ 잡는 혁신

피터버러 교도소 SIB의 출발점이 된 아이디어는 “단순 범죄자의 경우 출소 후 사회의 보살핌을 받으면 재범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는 데서 나왔다. 1년 미만 수감자 4만여명 가운데 60%가량이 출소 후 1년 내에 범죄를 다시 저지르고, 이로 인해 매년 20조원 안팎의 세금을 투입하는 영국 정부 입장에선 솔깃한 얘기였다.

하지만 복지 지출로 안 그래도 빠듯한 정부 살림살이에서 ‘출소자 사회적응 프로그램’ 운영비를 신설하는 건 부담이었다. 정부가 직접 운영할 경우 비효율로 인해 “세금만 축냈다”는 비난도 걱정거리였다.

SIB는 정부의 이런 걱정을 덜어주는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당장 예산을 마련할 필요 없이 훗날 정책 목표를 달성했을 때만 세금을 지출하기 때문이다. 정책 성공으로 거두는 사회적인 효용이 세금 지출분보다 큰 만큼 정부 입장에선 정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언제나 이기는 게임’이 된다.

피터버러 교도소 SIB의 시스템은 이렇다. 피터버러 교도소에 수감된 1년 미만 단기 수형자 3000명의 재범 빈도가 향후 6년간 다른 교도소에서 출소한 단기 수형자들의 재범 빈도보다 7.5% 이상 낮아질 경우 법무부는 소셜파이낸스에 ‘투자원금(사회복귀 프로그램 운영비)+연 2.5~13.3% 상당의 이자’를 지급한다는 게 주요 계약 내용이다. 다만 재범 빈도 하락폭이 7.5%에 못 미칠 경우 소셜파이낸스는 한푼도 받지 못한다.

투자 수익과 리스크를 짊어지는 건 소셜파이낸스가 아닌 SIB를 사들인 투자자들. 록펠러재단 등 17개 투자자들은 소셜파이낸스가 법무부와 맺은 계약 내용을 토대로 500만파운드(약 85억원)를 투자했다.

소셜파이낸스는 이 돈으로 다양한 전문기관과 계약을 맺고 각 출소자의 상황에 따라 ‘맞춤형 사회복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일스트러스트 소속 인력들은 출소자와 ‘친구’가 돼 각자에게 적합한 숙소 알선, 알코올중독 치료 등 사회 복귀에 필요한 것을 코치해준다. 오미스톤과 소바는 투옥과 함께 일어나는 가정 파탄을 막아주는 동시에 이들이 출소 후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을 도왔다. 뉴먼 디렉터는 “운영기관이 업무를 소홀히 할 것에 대비해 1년마다 재계약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검증된 성과…다양한 분야로 확산 중

‘집 없는 알코올중독자’였던 브라이언도 피터버러 SIB 대상자로 선정돼 작년부터 이런 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는 소셜파이낸스의 도움으로 사무실 청소 일자리를 얻었고, 잠잘 곳도 마련했다. 친구도 생겼다. 가끔 술을 마시지만 ‘야외 음주’는 끊었다. 브라이언이 ‘감옥 밖 생활’을 한 지도 1년이 넘었다. 뉴먼 디렉터는 “브라이언이 SIB 프로그램 덕분에 범죄와 옥살이를 반복하던 삶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IB는 수많은 ‘브라이언’을 양산했다. 이달 초 나온 중간평가에서 피터버러 평가 대상자(2010년 9월~2011년 12월 출소자 1000명)의 재범 빈도가 비교 대상(2008년 9월~2009년 12월)에 비해 12% 하락한 것. 같은 기간 영국의 평균 재범 빈도가 11%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효과를 낸 셈이다.

뉴먼 디렉터는 “정부 입장에선 SIB가 성공해 원금과 이자를 주더라도 남는 장사”라며 “SIB 덕분에 경찰력과 사법 비용, 교도소 운영비 등을 감축할 수 있는데다 범죄 감소에 따른 엄청난 무형의 혜택을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자일스트러스트는 범죄자 사회적응 프로그램에 1파운드를 투자하면 정부는 사회적 비용 10파운드를 절감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케네디스쿨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성공한 정책에만 세금을 투입하는 SIB는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각국 정부가 사회문제를 푸는 데 매력적인 해법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런던=오상헌/조진형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