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류(韓流)냐 일류(日流)냐
한충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팀이 동남아시아 5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 중국 일본의 문화 및 국가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보다는 높지만 일본보다는 낮게 나타났다.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 대중음악 등 문화 선호도가 일본에 비해 근소한 차로 앞섰지만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에선 일본보다 오히려 뒤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류가 널리 퍼져 있다고 믿어왔던 태국에서조차 일본 드라마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 조사 결과 드러나고 말았다.

그나마 20대 젊은 층과 여성층에선 한국 문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조사됐으나 30대 이상 회사원과 자영업자들은 오히려 일본 문화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이 한국의 드라마보다 일본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물론 동남아 시장에 대중문화를 먼저 전파한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부터 일본 가요와 영화를 태국과 필리핀 등에 수출해왔다. 2000년대 들어 겨울연가 등을 통한 한류 바람이 동남아 지역에 폭넓게 확산됐고 일시적이나마 한국의 문화적 승리를 확고하게 만들어 주는 듯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베트남 국영TV가 일본과의 국교 수립 40주년을 맞아 일본 민영 TV와 공동으로 두 시간짜리 스페셜 드라마를 만들어 지난달 방영했는데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 11개사가 직접 광고를 맡았다. 드라마를 통한 일본 PR이었다.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열린 행사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축하 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이 TV는 앞으로 ‘꽃보다 남자’ 등 일본의 역대 인기 드라마 90편을 순차적으로 방송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얀마 국영방송 역시 일본 민방 TBS와 포괄적 제휴관계를 맺었다. 대만에서는 최근 일본에서 인기리에 끝난 TV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를 곧바로 수입한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취임 초부터 일본 콘텐츠를 알리자는 ‘쿨 재팬’ 전략을 내걸었다. TV 방송 시장 규모가 한국의 10배에 달하지만 프로그램 수출은 한국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었다. 일본은 문화청 예산을 두 배나 늘리고 콘텐츠 유통 촉진 정책까지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을 국가의 기치로 내걸고 있다. 해외에서 한류를 꽃피우는 것도 문화융성의 한 가닥일 것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