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獨·日 주요 연구중심대학 총장 좌담회

기술 발달이 고용의 敵?…새 일자리 창출 가능
새로운 산업에 맞는 인재교육 대학이 맡아야

임금 경쟁력 낮은 한국, 창조경제 반드시 필요
노벨상은 '그들만의 리그'…科技 우수성 척도 아냐
외르크 슈타인바흐 베를린공대 총장(왼쪽), 미시마 요시나오 도쿄공대 총장(오른쪽)과 강성모 KAIST 총장(가운데)이 한국경제신문 주최 좌담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외르크 슈타인바흐 베를린공대 총장(왼쪽), 미시마 요시나오 도쿄공대 총장(오른쪽)과 강성모 KAIST 총장(가운데)이 한국경제신문 주최 좌담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기술 발달이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 발달로 새로운 산업이 탄생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납니다. 그에 맞는 인재를 키우면 됩니다. 이는 대학의 몫입니다. 대학의 책임과 역할이 커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KAIST 주최로 15일 서울에서 열린 ‘2013년 세계연구중심대학 총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외르크 슈타인바흐 베를린공대 총장과 미시마 요시나오 도쿄공대 총장은 이같이 지적한 뒤 “점점 더 빨라지는 기술환경 변화에 맞춰 대학이 교과 과정을 재설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총장회의에 앞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슈타인바흐 총장, 미시마 총장, 강성모 KAIST 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좌담회를 열었다. 사회는 전설리 IT과학부 기자가 맡았다.

총장들은 기술 변화에 따라 대학이 변신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초학문이 탄탄해야 환경 변화에 맞춰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사회=한국 정부는 핵심 국정 과제로 ‘창조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강성모 총장=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은 과학과 기술을 기반으로 경제를 일으키려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을 적용하면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외르크 슈타인바흐 총장=창조경제 정책을 꼭 도입해야 하는 국가들이 있다. 한국도 그중 하나다. 적은 임금으로 같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국가가 많아졌다. 때문에 선진국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창조경제가 필요한 이유다.

▷미시마 요시나오 총장=일본도 마찬가지다. 아베노믹스를 내세운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의 미래를 위해 창조와 혁신은 필수”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과학과 기술 영역에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인재를 키우는 데 기꺼이 예산을 투자할 것이다.

▷사회=세계적으로 실업률이 높다. 기술 발달이 일자리를 빼앗아 경제 성장을 막는다는 지적도 있는데.

▷강 총장=기술 발달로 새로운 산업이 탄생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 무인 택시를 예로 들어보자. 무인 택시가 많아지면 택시 운전사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하지만 택시 안에서 승객들이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산업이 생겨날 것이다. 이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키워야 한다. 대학은 물론 정부도 새로운 산업에 맞는 인적 자원을 개발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슈타인바흐 총장=이런 변화가 대학에 더 높은 책임과 많은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환경 변화에 맞춰 전문성을 키운다는 명목 아래 좁고 깊은 학문을 가르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 새로운 동향이 지속가능한지, 단지 일시적인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 총장=해답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back to basics)’이다. 기술환경의 변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미래의 직업을 위해 깊을 뿐 아니라 폭넓게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기초학문이 탄탄해야 환경 변화에 맞춰 응용할 수 있다.

▷사회=기본소양과 기초학문 교육, 연구 등 대학의 기존 역할과 기술이전, 창업지원 등 새로운 역할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미시마 총장=기본 교육은 언제나 중요하다. 도쿄공대는 교육제도를 개편해 학생들에게 과학과 기술을 배움으로써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라고 가르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의 역할은 학생들이 활용하는 능력,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슈타인바흐 총장=최근 10~20년간 엄청난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은 기초학문은 물론 이런 연구결과도 공부해야 한다. 또 다른 활동 등을 통해 인성과 사회성도 길러야 한다. 이전할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창업도 해야 한다. 대학은 학생들이 이 모든 것을 한정된 시간 안에 소화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베를린공대는 최근 5년간 교과과정을 ‘투입(input)’이 아닌 ‘성과(output)’ 중심으로 개편했다. 예컨대 과거엔 학생에게 (졸업하기 위해) 수학 강의를 20시간 들을 것을 요구했다. 투입 위주의 방식이다. 지금은 학생이 몇 시간을 수강하든 관계없이 교과과정을 이수하면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되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성과 위주로 바꾼 것이다. 바꾸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교수들의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밀어붙였다. 지금은 개혁의 성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강 총장=기초과학을 희생하는 기술이전은 위험하다. 겉으로는 관련 없어 보이는 기초과학도 실제로는 모두 창업, 기술이전과 연관돼 있다. 혼돈이론, 수학, 화학 모두 실용성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사회=창업 활성화를 위해 어떤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나.

▷슈타인바흐 총장=베를린공대는 ‘비즈니스 엔젤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창업 희망자가 마음놓고 창업하는 것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실패하지 않도록 조언해줄 멘토, 자금을 지원해줄 벤처캐피털 등을 연결해준다. 이를 통해 창업자가 실패할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미시마 총장
=일본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가 뿌리 깊다. 창업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중요한데 학생들이 지나치게 실패를 두려워한다. 일본은 이런 문화부터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강 총장=(미시마 총장에게)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국도 같은 상황이다. 우리는 안정적인 미래를 최고 가치로 삼는다. 부모가 자식을 그렇게 교육시킨다. 이런 문화를 바꿔야 한다. 많은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최고의 성취를 달성할 수 있다. 토머스 에디슨은 2만5000번의 실패 끝에 축전지를 발명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학과장을 맡고 있을 때 집적회로(IC)를 발명해 2000년 노벨상을 수상한 잭 킬비를 만났다. 그가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에서 근무할 당시 상사는 그에게 집적회로를 개발하지 말라고 했다더라. 그는 모든 장비가 멈춘 휴일에 몰래 출근해 결국 집적회로 개발에 성공했다.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줘야 한다.

▷사회=용기를 가지라고 하지만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안정적인 직업도 찾기 어려워졌는데.

▷슈타인바흐 총장=기업에 입사해보면 알겠지만 안정적인 직업이란 것은 없다. 매우 안정적으로 보이는 지멘스도 최근 1만50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사회=한국은 아직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노벨상 수상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슈타인바흐 총장=노벨상은 더 이상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아니다. 지난해 겪은 일이다.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로 이동하는데 뒷좌석에서 한 과학잡지 편집장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다음 노벨상 수상자였다. 그들은 논문이 얼마나 많이 인용됐는지가 노벨상 수상 당락에 중요하다고 했다. 이는 연구 성과의 질과 전혀 관련이 없다. 인용 빈도를 높이기 위해 로비를 하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행태다. 노벨상이 정치와 로비의 결과일 수 있단 얘기다. 물론 노벨상은 한 과학자의 업적을 인정해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상이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유무가 대학 우수성의 잣대가 돼선 안 된다.

▷강 총장=노벨상보다 한 분야의 연구를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깊이 있는 성과가 나오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해외에서 초빙된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 정부의 연구과제는 매년 바뀐다. 올해는 이 분야를, 내년에는 다른 새로운 분야를 과제로 내세운다. 하던 분야를 계속하고자 하면 그 연구는 지난해 하지 않았느냐며 못하게 한다. 좀 더 연구를 진행하면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위험한 정책이다.

[세계 연구중심대학 총장회의] "실패 많을수록 성공 가까워져…안정적 직업 매달리지 말라"

◆외르크 슈타인바흐 베를린공대 총장

1985년 베를린공대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고, 1994년 이 대학 교수가 됐다. 학과장 부총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쳐 2010년 총장으로 임용됐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유럽공학교육학회 회장을 지냈다. 2009년부터 독일 공학·자연과학 학위인증위원회의 집행이사회 부위원장직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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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요시나오 도쿄공대 총장


도쿄공대 금속공학과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1979년 UC버클리에서 재료공학과 박사, 1984년 도쿄공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도쿄공대 정밀지능연구소 조교수로 부임, 정교수를 거쳐 지난해 10월 도쿄공대 총장으로 임명됐다. 2010년 프런티어 연구소장, 2011년 솔루션 연구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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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모 KAIST 총장


1966년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에 입학해 미국 페어리디킨슨대 전자공학과로 유학했다.

UC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AT&T 벨연구소 연구원, 일리노이대 교수,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공대 학장 등을 맡았다. 2007년부터 4년간 한인 최초로 UC머시드대 총장을 지냈다.

정리=전설리/김보영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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