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 "영향 없을 것" 강조…전문가들은 "적잖은 파장" 전망

러시아 정부는 애써 부정하고 있지만 전(前)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에 대한 러시아의 임시 망명 허가는 러-미 관계에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가 미국의 줄기찬 인도 요청을 뿌리치고 스노든에게 임시 망명을 허가한 상황을 미국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반까지 미국의 유럽 미사일 방어(MD) 기지 구축 계획 강행, 미-러 양국의 상호 인권법 제정과 인권 침해자 제재 명단 발표 등으로 최악의 갈등 국면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가 지난 5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모스크바 방문으로 화해 국면으로 전환되는가 싶던 상황에서 불거진 스노든 사건이 화해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러시아 이민국은 1일 미 정보당국의 개인정보 수집 활동을 폭로하고 러시아로 피신해 러시아 정부에 임시 망명을 신청했던 스노든에게 1년간의 한시적 망명을 허가했다.

이로써 스노든은 미국으로 강제 추방당할 위험에서 벗어나 한동안 러시아에서 자유롭게 체류할 수 있게 됐으며 원하면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자격도 취득했다.

러시아 국내 여론은 스노든에 대한 임시 망명 허용에 대체로 호의적이다.

대통령 인권위원회 위원 키릴 카바노프는 스노든이 임시 망명을 허용받은 것은 예상됐던 일이라며 그가 러시아에 영구 정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 정책자문기구인 '사회평의회' 사무차장 미하일 오스트롭스키도 스노든에 대한 임시 망명 허가는 합당한 결정이라며 이제 스노든이 1년 동안 자신의 향후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됐다고 환영했다.

크렘린궁은 러-미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은 "미국에서 스노든 문제를 둘러싸고 어떤 관심이 조성돼 있는지 알고 있지만 아직 미국 정부로부터 어떤 신호도 받지 못했다"며 이번 사건이 러-미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스크바 국립대 국제정치학부 교수 블라디미르 바르테네프도 "장기적으로 러-미 관계가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양국 사이에는 더 많은 공통 관심사들이 있으며 스노든 문제는 지나치게 과장되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양국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현지 외교문제 전문가 세르게이 오즈노비셰프는 "러시아의 외교적 이익 관점에서 보면 스노든을 가능한 한 빨리 어딘가로 보내는 것이 러시아엔 이익"이라며 "미국과의 관계가 전략적 측면에서 정보기관을 둘러싼 게임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스노든 문제가 러-미 관계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지적이었다.

미국은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러시아에 스노든 인도를 요청해 왔다.

이같은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부정적 여파가 있을 것임을 은근히 경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신병 인도에 부정적 태도를 견지하자 지난달 23일엔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이 직접 알렉산드르 코노발로프 러시아 법무장관에게 서한까지 보냈다.

홀더 장관은 이 서한에서 "현재 스노든의 범죄혐의는 사형에 처할 사안이 아니다"며 "설혹 사형에 처해질 범죄혐의가 추가되더라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실히 보장한다"고 밝혔다.

스노든이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고문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고 간첩죄와 국가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켜 어떻게든 그를 넘겨받으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미국의 이런 마지막 요청에도 '노(No)'로 응답했다.

그리곤 얼마 뒤 예상대로 스노든에게 임시 망명을 허가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러시아의 조치에 불만을 제기하며 적절한 보복 조치를 취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당장 9월 초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불참한다는 발표를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미국의 대응 조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