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재테크 리포트] 금융위기후 채권형 펀드 6%서 67%로…'밸런스드' 펀드도 각광
홍콩의 대표적 상업지역인 완차이에서 일하는 펑착큐(38)는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예금 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데다 ‘버냉키 쓰나미’ 이후엔 주식 채권시장도 불안해졌다”고 했다. 펑씨는 “그래도 제로 금리인 홍콩에선 믿을 게 펀드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채권형 펀드의 경우 작년처럼 10%가 넘는 고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도 최소 기대 수익률이 연 5~6%는 되기 때문에 지금도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입한다”고 말했다.

채권형펀드 판매액 급증

전통적으로 은행 예금을 선호하던 홍콩 사람들은 펀드, 주식, 채권 등 금융투자상품으로 발길을 돌린 지 오래다. 지난 5월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3.88%에 달할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지만 예금 금리는 형편없이 떨어져서다. 홍콩 HSBC은행에서 1년짜리 정기 예금에 가입하면 이자는 연 0.15% 안팎이다. 거액을 예치해도 가산금리는 0.05%포인트를 넘지 않는다는 게 현지 은행들의 설명이다.

홍콩의 정부채(홍콩특구정부기구채) 3년물 금리는 2005년만 해도 연 4.058%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작년엔 연 0.168%까지 하락했다. 달러화와 연동된 홍콩 환율제도의 특성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이 실시한 양적완화의 영향을 그대로 받은 까닭이다.

때문에 홍콩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은 상품이 채권형펀드다. 홍콩 자산운용사들이 가입한 홍콩투자기금협회에 따르면 홍콩 내 펀드 판매액은 2007년 455억달러(약 51조1650억원)에서 2009년 150억달러(약 16조8700억원)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549억달러(약 61조7350억원)로 급격히 반등했다.

핵심은 채권형펀드였다. 2007년 전체 펀드 판매의 6.3%를 차지하던 채권형펀드는 작년 67.3%까지 늘어났다. 특히 북미와 아시아지역의 채권형펀드가 가장 인기다. 거꾸로 주식형펀드의 판매 비중은 같은 기간 84.2%에서 19.0%로 급락했다.

마르코 탕 베어링자산운용 아시아세일즈 본부장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국의 주식 버블이 꺼지면서 주식형펀드에선 자금이 빠져나간 반면 채권형펀드는 각광받았다”고 말했다. 펀드에 가입하지 않고 직접 채권을 사들이는 사람도 꽤 늘었다고 했다. 이재환 하나은행 홍콩지점 프라이빗뱅커(부장)는 “2011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인플레이션 연계 정부채(iBond)를 직접 창구에서 매입하려는 수요가 많다”고 전했다.

올 들어선 채권과 고배당 주식에 나눠 투자하는 ‘밸런스드펀드’가 전체 펀드판매의 32.1%를 차지하며 대안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이 상품은 한국의 멀티에셋펀드와 비슷하다. 탕 본부장은 “채권형펀드의 수익률이 주춤해지면서 배당주 리츠 등 수익형 주식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환차익 노리는 외화예금 관심도

중국에서 펀드 등 투자형 상품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2002년께부터다. 한국의 주가연계증권(ELS)과 비슷하게 3년 만기로 주가나 채권 금리 등이 일정 조건에 부합하면 연 8~10%의 수익을 보장하는 자본형성펀드(Capital Generation Fund)가 중심이었다.

에디 왕 JP모건자산운용 전무는 “중국 본토 증시가 급등하면서 주식형펀드 열풍이 불었지만 금융위기 이후엔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으로 회귀했다”고 말했다. 판매되는 펀드들이 대부분 월지급식 방식인 게 그런 투자성향을 반영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홍콩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또 다른 상품은 외화예금이다. 리콰이청 씨티은행 웰스매니지먼트 사업부 이사는 “중국 위안화나 호주달러, 뉴질랜드달러 등 외화자산으로 예금하면 연 3% 내외의 금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화예금을 찾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 거래에 익숙한 홍콩인들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환차익까지 노릴 수 있는 외국환 예금을 많이 찾는다는 설명이다. 홍콩투자기금협회가 작년 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콩 사람들은 외화예금에 26%, 위안화예금에 8%의 자산을 평균적으로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전문가들은 홍콩 사람들이 주식 투자 비중을 앞으로 늘려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탕 본부장은 “밸런스드펀드 가입자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주식 비중을 계속 높여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올 들어 채권형펀드의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공격적인 주식 투자에 나서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리콰이청 이사도 “은행 소매판매 창구에서 주식형 투자상품에 대한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홍콩=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

◆특별취재팀=팀장 조재길 증권부 차장(호주), 안상미(독일)·황정수(일본)·조귀동(홍콩) 증권부 기자/유창재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