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중도·개혁 단일화로 투표율 높여 '낙승' 견인
보수 후보 단일화 실패도 원인…"조작 안 한 결과" 분석도

이변이었다.

이란 대선에서 중도파 하산 로우하니 후보가 다른 보수파 후보들과 접전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15일(현지시간) 결선투표 없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이날 로우하니 후보의 선전 소식을 시시각각 전하며 이란 대선 개표 결과가 '충격적'(shocking)이라고 거듭 보도했다.

'이란 중도·개혁 연대의 승리'라는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로우하니의 승리는 선거일을 사흘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중도파와 개혁파의 후보 단일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

개혁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는 애초부터 보수 성직자 중심의 현 지배체제에 대한 반대를 표시하기 위해 이번 대선에 불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4년 전 대선 부정 선거 의혹과 당국의 시위 강경 진압, 미르 호세인 무사비와 메흐디 카루비 등 당시 야권 지도자의 가택연금 지속에 항의하려는 목적에서다.

일반 시민 역시 성향과 관계없이 투표를 해 봐야 일상생활이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 대선에 무관심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개혁파로 분류되던 모함마드 레자 아레프 후보가 지난 11일 전격 사퇴하자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실제 하타미 전 대통령은 아레프 후보가 사퇴를 발표한 지 몇 시간 만에 로우하니 후보 지지 방침을 공식 천명했다.

여기에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마저 지지를 공식 천명, 로우하니 당선인은 든든한 '후광 효과'마저 얻게 됐다.

라프산자니와 하타미 전 대통령이 선거 전날까지 유권자들에게 투표 참여를 호소하면서 개혁 성향의 유권자는 물론 선거에 무관심한 일반 시민마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미르(31·가명·여)씨는 선거 당일 오후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대선에 무관심한 친구들에게 로우하니 후보에 표를 던지라고 전화를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실제 오후 늦게까지 수많은 유권자를 투표소로 향하게 했고, 이란 내무부는 애초 오후 6시였던 투표 마감 시간을 세 차례에 걸쳐 연장, 일부 도시에서는 오후 11시까지 투표가 이어졌다.

이는 곧 72.7%에 달하는 높은 투표율로 이어졌고, 역대 대부분의 대선과 마찬가지로 이는 보수파 후보보다는 개혁파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50.7%에 달하는 로우하니 당선인의 득표율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보수파 후보들의 단일화 실패도 로우하니의 당선에 한몫 거들었다.

공식 선거 운동 이전부터 일부 보수파 후보 사이에서는 이른바 '3자 연대'가 결성되는 등 단일화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러나 세 번째 대권 도전을 선언한 중도파 거물 라프산자니가 헌법수호위원회 심사과정에서 탈락하자 보수파 내부에서 제기됐던 후보 단일화 요구는 잦아들었다.

그러던 중 로우하니 후보가 선거 중반부터 상승세를 타자 선거일을 나흘 앞둔 10일 '3자 연대' 소속인 골람알리 하다드 아델 후보가 보수 연대의 패배를 막으려고 전격 사퇴했다.

그럼에도 그 이튿날 중도·개혁 연대를 이룬 로우하니 후보의 선전이 이어지자 보수파의 결집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막판까지도 계속 나왔지만 결국 보수 진영은 단일 후보를 내는 데에는 실패해 결국 표가 갈렸다.

2위를 기록한 보수파 모함마드 바케르 칼리바프 후보의 득표수는 로우하니 후보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고 득표율로는 34.15%p 차이가 났다.

2009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보는 일각에서는 내무부가 아무런 조작 없이 공정하게 개표 결과를 발표한 덕분에 로우하니가 승리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이는 자신의 측근인 에스판디아르 라힘 마샤이 전 비서실장을 대선 후보에서 탈락시킨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 대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소심하고도 정당한 복수'의 결과라는 음모론적인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하메네이와 아마디네자드 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제쳐두더라도 최고지도자와 로우하니 당선인이 가까운 사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은 약간 떨어진다.

실제 로우하니는 최고국가안보위원회에서 하메네이의 대리인을 역임했을 정도로 최고지도자가 신임하는 인물로 보수 성직자, 군부와도 원만한 관계라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다른 일각에서는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 로우하니 후보 사이에 모종의 권력 분배 협상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로우하니 당선인의 승리를 가져온 중도파와 개혁파의 연대는 이란 정치사에 획을 그은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메네이를 주축으로 한 보수파와 라프산자니의 중도파, 하메네이의 보수파와 아마디네자드의 신보수파가 연대를 이룬 적은 있어도 중도파와 개혁파의 연대로 정권을 획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로우하니 후보의 당선은 변화를 갈망하는 이란 국민의 열망이 중도개혁 연대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나타난 결과"라고 평가했다.

(두바이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hyunmin6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