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센카쿠 유보 합의' 놓고 진실 공방
중국과 일본이 1972년 국교 정상화때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문제에 관한 논의를 유보하기로 합의한 사실 여부를 놓고 다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일본의 초당파 전·현직 국회의원 11명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전 관방장관이 3일 중국 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산(劉云山)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센카쿠문제 유보 합의' 이야기를 스스로 꺼냈기 때문이다.
노나카 전 장관은 회담후 기자들에게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국교 정상화 회담을 벌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일본 총리로부터 "명확히 들었다"면서 여생이 얼마남지 않은 입장에서 "산증인"으로서 밝힌다고까지 말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4일 중국측과 그런 합의를 한 사실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심지어 한때 집권 자민당의 실력자였던 노나카 전 장관의 발언에 대해 정치 일선을 떠난 한 개인의 발언일 뿐이라는 식으로 깔아뭉갰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은 "외교기록을 봐도 그런 합의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을 통해 노나카씨의 발언은 "역사적 사실"이라면서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고 사실을 존중해 노나카씨와 같은 일본국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길 요구한다"고 받아쳤다.
아베 정권이 노나카씨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센카쿠 논의 유보 합의' 발언을 방치할 경우 '센카쿠 영토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간의 일본 정부 입장은 물론 국민 여론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센카쿠 문제의 주도권이 자칫 중국에 넘어갈 수도 있다.
정치노선에서 아베 총리와 대척점에 있는 자민당 보수 본류의 친중파 정치인 노나카 전 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유보 합의 발언이 나온 것도 '아베정권 흔들기'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일본의 보수 우파 세력들은 노나카씨가 중국의 선전전에 놀아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노나카씨는 4일 귀국후 '중국에 이용당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 등에도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일본 정부가 유보 합의 사실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중·일 대립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측이 '센카쿠 유보'론을 제기하는 것은 대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신호라는 견해도 외무성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일부 전직 일본 외무성 관료 중에는 유보 약속의 존재를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센카쿠 유보 합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1978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덩샤오핑(鄧小平) 중국 부총리가 중·일 양국이 1972년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센카쿠 영유권 문제는 서로 거론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밝히면서다.
덩 부총리는 당시 '우리 세대에서 해결의 지혜가 안보이는 문제는 후대에 맡기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후 일본 정부는 이 문제와 관련, 1972년 당시 저우 총리가 다나카 총리에게 "지금 이것(센카쿠)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석유 때문에 이게 문제가 됐다.
석유가 안나오면 대만도 미국도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기록만 남아있을 뿐, '유보' 등의 약속은 없었다고 밝혀왔다.
일본측은 중국이 1992년 영해법을 제정하면서 센카쿠의 '영해'를 명기한 것은 센카쿠 유보론과 모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에 대한 중국측의 설명은 다르다.
다나카 총리는 '유보' 이야기를 꺼낸 저우 총리에게 "알았다.
이 이상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자"고 유보에 응했다는 입장이다.
(도쿄연합뉴스) 김용수 특파원 ys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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