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시신 러시아로 보내라", 체첸선 "우리와 관계없다"

미국 보스턴 마라톤 테러범 타메를란 차르나예프가 죽어서도 갈 곳이 없는 비참한 운명에 처했다.

미국에서 그의 시신을 출신지인 러시아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러시아 체첸 정부마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체첸인 아버지와 다게스탄(체첸 인접 공화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타메를란(26)은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출생해 한때 체첸과 다게스탄에서 살다 15세 때인 2002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남부 캅카스 지역의 체첸 자치정부 수장 람잔 카디로프는 6일(현지시간) 차르나예프 형제를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현지 학교 교장들과의 면담에서 "사람들이 내게 왜 (체첸인인) 차르나예프 형제를 옹호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해온다"면서 "그동안 그들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느라 기다렸지만 이제는 타메를란과 조하르(19) 차르나예프 형제가 진짜 악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카디로프는 "나는 그들을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지지하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카디로프는 "차르나예프 형제는 체첸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그들은 키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나 부모들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졌으며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이 그 결과"라고 꼬집었다.

테러 이후 경찰 추격전 과정에서 사살된 타메를란은 미국에서도 묻힐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타르타스 통신에 따르면 타메를란의 시신을 보관 중인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우스터시(市) 장례식장의 피터 스테판 대표는 "장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들은 모두 타메를란의 시신을 러시아로 보내길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타메를란의 시신을 넘겨받아 우스터시 장례식장에 맡긴 유족들은 6일 이슬람 전통에 따라 장례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뉴저지 등 3개 주 당국이 하나같이 장지 제공을 거부해 곤경에 빠져 있다.

타메를란이 테러 전까지 살았던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 당국은 "시민들이 간신히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는 시점에 테러 용의자를 우리 관내에 묻는 것은 그들에게 또다른 스트레스가 될 것이며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에서는 타메를란의 시신 처리를 두고 고향인 러시아로 보내든지 9.11 테러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처럼 수장(水葬)하든지 악질 범죄자들처럼 화장하든지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러시아에 머물고 있는 타메를란의 어머니 주베이다트는 5일 스테판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와 "아들의 시신을 러시아로 옮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에 스테판 대표는 "그를 러시아로 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는 국가 안보와 연결된 문제로 국무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패트릭 벤트렐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6일 정례 브리핑에서 아직 타메를란의 시신을 러시아로 보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