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캐롤 "오빠 때문에 속이 다 탔을 것"

8일 사망한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가 정치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 데니스 대처가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고 영국 언론들이 평가했다.

대처는 옥스퍼드 대학을 갓 졸업해 25살이던 1950년 총선에 출마해 최연소 후보자이자 여성 후보자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비록 선거에는 패했지만 마거릿은 유세에서 평생 가장 큰 응원군이 된 남편 데니스를 만났다.

석유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이자 이혼남으로 당시 35살인 데니스는 마거릿을 기차역까지 태워주면서 둘 간에 연정이 싹텄다고 2006년 나온 '마거릿 대처' 자서전은 소개했다.

데니스가 넉넉지 못한 식료품 가게의 딸로 자란 마거릿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덕분에 마거릿은 경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자서전은 전했다.

마거릿은 결혼한 그해 쌍둥이 아들을 출산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지는 데니스를 두고 "대처가 성공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데니스 경을 두고 마거릿 대처 인생의 기초이자 자신보다 부인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다고 인디펜던트는 소개했다.

마거릿은 남편을 두고 "촌철살인의 조언을 쏟아내는 보물창고"라고 평하면서 "그가 없었다면 아무 일도 못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대처는 이어 "내가 화가 났거나 뭔가 바보 같은 일을 했을 때 함께 대화를 하다 보면 남편 덕분에 제정신이 돌아온다"고 술회했다.

데니스 역시 "유사 이래 가장 위대한 여인과 결혼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과 헌신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데니스는 음주 탓에 곧잘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다.

딸 캐롤은 "아빠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유머를 쓰며 회피하곤 했다.

돌아가신 2003년까지 독한 진을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쉬엄쉬엄하자구'라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남편의 도움과 지지는 컸지만 자식들이 속썩이는 것은 '철의 여인'도 피할 수 없었다.

아들 마크는 사하라 사막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에 참가했다가 엿새간 사라졌다가 사막 한가운데서 구조됐다.

이 탓에 대처는 공식석상에서 보기 드물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마크는 아프리카 적도기니에서 벌어진 쿠데타에 연루돼 법정에서 엄청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 미국 정부는 마크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해 대처 가문의 자존심에 먹칠했다.

딸 캐롤은 "오빠 마크의 이런저런 일로 엄마가 얼마나 속이 시커멓게 탔는지…."라고 회고했다.

성장기 딸에게는 냉정하게 대해 쌀쌀맞은 엄마였으나 캐롤은 치매증을 겪는 마거릿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캐롤은 늙어가는 마거릿을 두고 "시간이 멈춰 나이를 먹지 않을 것으로 여겼는데, 말을 더듬고 기억을 못 하는 것을 목격하니 믿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런던연합뉴스) 김태한 특파원 th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