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방주의 견제, 중-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
교착상태 가스 협상 타결ㆍ국방 분야 협력 확대 기반 마련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러시아를 찾았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4일(현지시간) 2박 3일간의 러시아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음 방문국인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떠났다.

시 주석은 방러 기간에 미국 주도의 일방주의적 세계 질서를 견제하는 균형추로서 중국과 러시아 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한층 굳건히 하고 에너지 협력을 비롯한 30여 가지의 각종 협력 문서에 서명하는 등 실리적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몇 년 동안 끌어온 러시아산 가스의 중국 수입 협상을 타결 지은 것은 큰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막 임기를 시작한 시 주석과 지난해 3기 집권의 막을 올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로 간의 끈끈한 유대를 확인하면서 앞으로 양자 관계는 물론 국제 현안에서 양국의 공조와 협력이 더욱 긴밀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전략적 동반자 관계 재확인 = 최근 몇 년 동안 밀월을 누려오던 러-중 관계는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으로 한층 더 단단해졌다는 평가다.

시 주석은 방문 첫날인 22일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어 양국 간의 포괄적인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시 주석을 맞은 푸틴 대통령은 "중국 최고 지도자가 첫 번째 방문국으로 러시아를 택한 것은 두 나라가 상호 관계 구축에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이는지를 생생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푸틴은 이어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이 양국 관계 발전에 새롭고 강력한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시 주석도 자신의 방문 목적이 양국 관계의 추가적 강화와 두 나라의 포괄적 협력 및 전략적 동반자 관계 발전이라고 화답했다.

시 주석은 "오늘날 중-러 관계는 역사적으로 가장 좋은 시기를 맞고 있다"며 "러시아를 방문한 주요 목적도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도 "중-러 관계가 전례 없는 최고 수준에 달했다"면서 "두 대국 간 조화로운 공존관계 수립을 위해 영토주권을 비롯한 핵심적 이익을 지지하고 지역은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양국이 중요한 역할을 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푸틴도 "러-중은 여러 중대 문제에 대한 시각이 일치한다"며 "양국이 국가발전 진흥을 위해 노력하면서 공동 이익과 협력 범위를 넓혀나가야 한다"고 화답했다.

시 주석은 방러 이틀째인 23일 외교관 양성 전문학교인 현지 명문대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를 찾아 학생과 교수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도 중-러 협력의 국제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중-러 관계는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 가운데 하나"라고 규정하고 "이는 양국 관계에 해당할 뿐 아니라 세계 균형의 보장책"이라고 주장했다.

중-러 협력이 국제 사회에서 미국과 서방의 일방주의를 견제하는 균형추 구실을 하고 있음을 강조한 발언이었다.

◇ 에너지 분야 협력 강화 합의 = 첫날 정상회담에 이어 양국 정부 관계자 및 국영기업 대표 등은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30여 가지의 협력 문서들에 서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몇 년을 끌어온 가스 협상 타결이었다.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과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은 가스관을 이용한 러시아 천연가스의 중국 공급에 합의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그동안 가스공급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도 가격에서 큰 이견을 보이면서 몇 년 동안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중국 측이 1천㎥당 250달러를 제시했지만, 러시아는 300달러 이상을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교착 상태에 빠졌던 가스 협상이 시 주석의 방러로 극적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경제 팽창에 따른 에너지 수요 급증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중국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 성과다.

본격적 개발 단계에 있는 동시베리아 가스의 판로 모색에 고민해온 러시아로서도 안정적 시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역시 반가운 일이다.

밀레르 가스프롬 사장은 "동부 노선 가스관을 건설해 2018년부터 30년 동안 매년 380억㎥의 러시아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스 공급량이 600억 ㎥로 늘어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동부 노선'은 러시아 극동과 중국 동북 지역을 연결하는 가스관 노선을 의미한다.

밀레르 사장은 오는 6월 법률적 조건들에 관한 문서에 서명하고 연말까지 가스 장기 공급에 관한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러-중이 가스 협상을 타결 지음으로써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을 건설해 러시아 가스를 공급받으려던 남북러 3각협력 프로젝트에서 한국의 입지가 약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이란 판로를 확보한 러시아가 한국과의 협상에서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석유 분야에서도 성과가 나왔다.

러시아 석유기업 로스네프티와 CNPC가 선불 조건부 원유 공급 확대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이 협정에 따라 로스네프티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으로 수출하는 원유 공급량을 현재의 연 1천500만t에서 3천100만t까지 단계별로 늘릴 계획이다.

대신 로스네프티는 25년간 중국에 원유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중국개발은행으로부터 2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받기로 했다.

이밖에 양국 정부는 중국 톈진에 연 1천300만t 가공 능력의 원유가공 공장을 건설하는 협정에도 서명했다.

◇ 국방 분야 협력 확대 기반 마련 = 시 주석 방러를 계기로 두 나라의 군사 협력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시 주석이 외국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러시아 국방부의 두뇌 격인 작전통제센터를 방문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벤트로 평가된다.

시 주석은 둘째 날인 23일 러시아 국방부를 찾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면담하고 나서 작전통제센터를 둘러봤다.

작전통제센터는 육ㆍ해ㆍ공군과 항공우주군은 물론 핵전력을 지휘하는 러시아 국방부의 중추기관이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한국의 합참의장에 해당)은 센터를 찾은 시 주석에게 "당신이 러시아 국방부 작전통제센터가 문을 열어준 첫 번째 외국 지도자"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시 주석에 자국 국방력의 핵심센터를 보여주는 특혜를 베푼 것은 중국과의 군사협력 확대에 대한 기대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쇼이구 국방장관은 시 주석과의 면담에서 양국의 국방 및 군사기술 협력 확대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2000년대 중반까지 러시아 무기의 최대 수입국이었다.

하지만 이후 중국이 수입한 러시아 무기를 복제해 자체 생산에 나서면서 갈등이 일기 시작했고 양국의 대형 무기 거래가 사실상 끊어지다시피 했다.

시 주석의 이번 방러는 이 같은 국방분야의 불신 분위기를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최근 미국이 이란과 북한의 핵위협을 명분으로 유럽과 동북아 지역에서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구축 및 강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러-중 군사 협력을 재촉하는 요인이 됐다.

당장 중국과 러시아는 SU-35 전투기의 최신판인 SU-35MB의 대량 거래 협상을 막판 단계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15억 달러 규모의 SU-35 전투기 24대 거래 협상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밖에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최첨단 지대공 미사일 S-400, 일류신(IL)-76 수송기, 아무르급 잠수함 등의 무기 구매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