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언론 "런던 자택서 숨진채 발견…자살 가능성도"

한때 러시아 최대의 올리가르히(신흥재벌)로 명성을 날리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사정 칼날을 맞고 영국으로 망명해 생활해오던 사업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가 23일(현지시간) 사망했다고 러시아 언론매체들이 보도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사업가의 가족을 인용해 "베레조프스키가 오전 11시(현지시간) 런던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인터넷뉴스통신 뉴스루는 베레조프스키의 사위 예고르 슈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베레조프스키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고 소개했다.

슈페는 "보리스 베레조프스키가 숨졌다"고 밝히면지만 상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타르타스 통신도 베레조프스키의 측근들을 인용해 "그가 런던의 자택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면서 "자살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베레조프스키의 변호사였던 알렉산드르 도브로빈스키도 "런던의 지인으로부터 베레조프스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베레조프스키에 대한 수사를 벌여온 러시아 사법당국은 영국 당국으로부터 그의 사망에 관한 공식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법당국 관계자는 "런던 수사 당국이 아직 공식적으로 국제 수배 대상에 올라 있는 베레조프스키의 사망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1990년대 중반 러시아 정부의 국유재산 민영화 과정에서 막대한 부(富)를 축적한 대표적 올리가르히 베레조프스키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 및 그 측근들과의 유착관계를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내가 원하면 원숭이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 그의 말은 지금까지 러시아 정계에 회자하고 있다.

그러던 베레조프스키는 2000년 1기 집권에 성공한 푸틴 대통령의 올리가르히 척결 과정에서 쫓겨나 2001년부터 영국 런던에서 정치적 망명 생활을 해왔다.

그는 러시아와 스위스 검찰로부터 사기, 횡령, 돈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돼 국제 수배 대상에도 올랐다.

베레조프스키는 런던 망명 이후에도 푸틴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크렘린의 표적이 돼왔다.

지난해 중반에는 영국 프로축구 첼시 구단주로 푸틴 정권과 가까운 또 다른 올리가르히 로만 아브라모비치와의 55억 달러(약 6조1천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해 심각한 물질적, 정신적 타격을 입었다.

베레조프스키는 한때 그의 사업 파트너였던 아브라모비치가 2000∼2003년 러시아 5위의 민간 석유회사 '시브네프티'와 거대 알루미늄 기업 '루살' 등에 갖고 있던 자신의 지분을 팔도록 압력을 행사해 시가보다 훨씬 싸게 지분을 매각하면서 거액의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하지만 런던법원은 "베레조프스키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고, 신뢰할 수 없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이후 베레조프스키는 수천만 달러의 변호인 비용 때문에 고민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수임료 지급을 위해 소장해 오던 미술품과 1927년산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팔고, 런던 시내의 사무실을 폐쇄하는가 하면 일부 저택을 매각하고 직원을 해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베레조프스키가 소송 패소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