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암 투병 끝에 5일(현지시간) 사망했다. 58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부통령은 이날 “차베스 대통령이 2년 가까이 심각한 병마와 싸웠지만 결국 오늘 오후 4시25분께 서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회주의자인 차베스는 지난 14년간 집권하며 중남미 좌파 국가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그의 죽음으로 중남미 지역은 적잖은 변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베네수엘라 정국 안갯속으로

‘종신 집권’을 꿈꿨던 차베스는 지난해 12월11일부터 모습을 감춘 채 쿠바에서 암 치료에 전념했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7일 동안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장례는 오는 8일 치러진다.

차베스는 집권기간 내내 극단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매장량이 세계 최다인 원유와 각종 천연자원을 국유화했다. 이렇게 마련한 돈은 주로 서민들에게 풀었다. 또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극단적인 저환율 정책을 썼다. 이 같은 정책은 재정적자와 연 20%가 넘는 물가상승을 초래해 국가 경제 기반을 망가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석유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이하로 유지되면 베네수엘라는 올해 중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차베스 사망으로 여야는 ‘포스트 차베스’ 시대의 주도권을 놓고 극심한 갈등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베네수엘라 헌법에 따르면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현직 대통령 사후 30일 이내에 치러야 한다. 여당인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에서는 차베스가 후계자로 지명한 마두로가 후보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에서는 지난 대선 후보였던 엔리케 카프릴레스 미란다 주지사가 다시 나올 가능성이 높다. 40세의 카프릴레스는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 스타일의 친시장·실용 좌파적 경제관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여당의 승리를 조금 더 높게 점치는 분위기다. 지난해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카프릴레스가 여론조사에서 줄곧 앞섰지만 선거에선 패배했다. 작년 말 지방선거에서도 여당이 승리했다.

◆중남미 좌파 연대의 앞날은

차베스는 중남미 좌파 국가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 풍부한 자국 원유를 주변 동맹국들에 싸게 공급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했다. 차베스의 사망이 주변국의 정치·경제 지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선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의 지속 가능 여부가 주목된다. 메르코수르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이 주축이 된 남미 경제공동체다. 자유무역과 관세동맹이 핵심이다. 베네수엘라도 지난해 말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들 국가는 장기적으로 남미에 유럽연합(EU)과 같은 경제공동체를 만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원유를 바탕으로 ‘돈줄’ 역할을 했던 차베스가 사망하면서 메르코수르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미 좌파연대의 앞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쿠바 볼리비아 에콰도르 니카라과 등의 남미 좌파정권은 베네수엘라에서 싼 석유를 공급받아 이를 기반으로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정책을 펼쳐 정권을 유지해왔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공급이 끊기면 좌파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 남미 전문가인 양호인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차베스가 주도해온 좌파 연합 국가의 경제가 흔들리면 남미 전체적으로 시장경제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여부도 관심사다. 차베스는 극단적인 반미주의자였다. 그러나 미국은 전체 원유 소비량의 10%를 베네수엘라에서 수입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베네수엘라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면 미국은 거리도 멀고 정치적으로도 불안한 중동에서 수입하는 석유량을 줄일 수 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