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10년, 기로에 선 한국 (1)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 기업
중국 기업의 기술추격 현장 가보니

한국 고급인력 中 기업서 유치
韓 베테랑 디자이너에 月 520만원
동대문 찾던 의류 바이어 광저우로 발길
中서 '사장님' 대접받던 한국인, 이젠 봉급받는 乙로

“김 과장님, 이번에 나온 의류 디자인 시안 좀 봐주세요.”

신생 의류업체 크라이더의 중국 광저우시 사무실. 한국인 20여명이 한국어로 얘기하며 업무를 하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영락 없는 한국 기업. 그러나 크라이더는 중국인이 지난해 초 세운 중국 회사다. 사장만 중국인일 뿐 디자이너와 관리자 등 핵심 인력은 모두 한국 사람이다.

시진핑 국가주석-리커창 총리를 중심으로 한 5세대 지도부가 출범하는 중국의 한국 추격 방식이 더욱 다각화하고 집요해지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 가격 경쟁력 높이기는 옛날 이야기다. 이제는 한국 기업의 전 임직원을 고용해 디자인과 기술력 격차도 줄이고 있다.

中서 '사장님' 대접받던 한국인, 이젠 봉급받는 乙로

◆한국인이 기술 추격 발판


지난해 7월 선전시가 출자한 한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업체는 한국 대기업 출신 기술자를 부사장으로 데려왔다. LCD 생산기술부터 제조라인까지 한국을 따라잡자는 전략에서다.

화웨이, ZTE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도 삼성전자와 LG전자 출신 기술자들을 임원으로 고용하고 있다. 모두 한국에서 공장장으로 일했거나 연구·개발의 핵심을 담당했던 인력들이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중국 전자회사들을 접촉하다 보면 한국 기업 출신 임원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회사를 그만둔 직후 중국으로 옮겨 오면서 동종업계 취업과 관련된 법적, 윤리적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구체적인 신원은 쉬쉬한다”고 귀띔했다. 한국 기업들은 퇴직 인력이 중국으로 건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추적할 길이 없어 속수무책이다.

중국 기업들은 2~3년간 이들 인력으로부터 중요 기술을 전수받은 뒤 대부분 해고한다. 해고된 인력들은 보다 규모가 작은 다른 중국 기업에 다시 취업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정성화 광저우KOTRA 부관장은 “한국인 기술인력을 유치해 오는 브로커들도 많다”며 “한 번 중국으로 들어온 한국 기술자들은 지역을 옮겨 다니며 중국 기업 전반의 기술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기업 내 한국인 인력이 한국 기업을 추격하는 발판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 인력을 유인하는 인센티브는 높은 급여다. 한국인을 활발하게 고용하고 있는 광저우 등 남부 해안지역의 중국 의류업체들은 베테랑 디자이너에게 한 달에 3만위안(약 520만원) 이상을 준다. 한국보다 대우가 좋은 것은 물론 현지 한국 업체들보다 5000위안 정도 높은 수준이다.

광저우에서 2003년부터 의류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방기정 샤트리나 사장은 “중국 업체들이 한국인 디자이너를 고용해 부족하던 상품 개발력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업체들은 현지 한국 업체에서 일하는 중국인 기술인력도 흡수하고 있다. 중국 현지 포스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중국 내 최대 철강기업 바오산강철 노동자들보다 5~10% 정도 낮다. 박성범 충칭포스코 부사장은 “봉급을 바오산강철에 맞춰주기가 어려워 그나마 복지 혜택 등으로 우수 근로자들의 이직률을 낮추고 있다”고 토로했다.

◆바이마시장에 따라잡힌 동대문

상품 유통 방식 등에서도 중국은 한국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동대문’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의류 도매시장 모델이 그렇다. 광저우에는 바이마(白馬)시장, 위룽(御龍)시장 등을 필두로 대형 의류 유통상가 16곳이 영업하고 있다. 구매자들이 옷을 보고 제조를 의뢰하면 하루 만에 대량 생산해 납품하는 동대문 방식 그대로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인들이 도입한 의류 유통 모델이 광저우시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빠르게 성장한 결과다. 한 달에 1000만원을 웃도는 주요 의류 유통상가의 임대료에도 끄떡 없이 성장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과 달리 초기 시장을 개척했던 한국 의류업체들은 밀려나고 있다.

광저우 의류 도매상가가 성장하면서 동대문을 찾던 외국인들도 광저우로 구매처를 바꾸고 있다. 방기정 사장은 “10년 전만 해도 동대문을 찾던 동유럽과 중동의 의류 구매상들이 광저우로 몰려오고 있다”고 전했다. 도매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중국인 저우칭 씨는 “아프리카에서도 바이어가 와 수천달러어치씩 옷을 사간다”고 말했다.

한국 의류 디자인 ‘베끼기’도 진화하고 있다. 중국의 주요 의류 도매상과 제조업체들은 한국인 직원을 동대문에 파견해 실시간으로 디자인 동향을 체크한다. 한국인 직원이 매일 새로 나온 옷 50~100벌을 국제 택배로 보내면 광저우에서 바로 찍어내는 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동대문과 광저우의 디자인 ‘시간차’가 한 달에서 하루로 줄었다”며 “외국인 구매자 입장에서 굳이 동대문까지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충칭·광저우=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한경ㆍ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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