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2기 취임식이 21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DC의 의회 의사당에서 백악관에 이르는 내셔널 몰에 수십만 명의 청중이 운집한 가운데 진행됐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을 축하하러 새벽부터 수많은 인파가 내셔널 몰로 몰려들어 줄을 길게 선 채 곳곳에 설치된 검색대를 통과했다.

날씨도 구름은 조금 많았지만 바람 없이 비교적 포근해 그의 재임을 축하했다.

오바마 대통령 및 조 바이든 부통령 부부는 이날 오전 9시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성 요한 교회에서 아침 예배를 보는 것으로 취임 행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오전 10시40분 백악관에서 나와 방탄 차량을 타고 대형 성조기가 드리워진 의회 의사당의 취임식장으로 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검은색 정장에 푸른 색 넥타이를 맸고 미셸 여사는 체크무늬가 들어간 감청색(navy blue) 코트형 드레스를 입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옷차림은 1기 취임 때와 비교하면 넥타이가 붉은색에서 푸른 색으로 바뀌었고 4년 전 노란색 바탕에 반짝이는 흰색 꽃무늬가 들어가 밝고 화사한 느낌이 들게 했던 미셸 여사는 이번에는 차분함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탄 흑색 리무진 차량은 '800 002'와 '대표 없이 과세 없다(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문구가 새겨진 번호판을 달았다.

취임식이 공식 개막되기도 전에 의사당 앞 내셔널 몰과 축하 행진이 열린 펜실베이니아대로 일대는 그야말로 형형색색 인파와 성조기의 물결로 가득 넘쳐나 장관을 연출했다.

그러나 청중 숫자는 4년 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게 확연하게 드러나 보였다.

오전 11시부터 지미 카터, 빌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 부부들이 행사장 중앙무대에 착석했다.

조지 HW 부시 및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자 내외는 병환 등을 이유로 행사에 불참했다.

이어 조 바이든 부통령 등이 중앙 무대에 올랐고 11시20분께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해 환호하는 청중들에게 환한 미소로 답례했다.

취임식 행사준비위원장인 척 슈머(민주·뉴욕) 상원의원의 개회사로 취임식은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슈머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가운데 이름인 '후세인'을 그대로 부르지 않고 머리글자를 써 '버락 H. 오바마'로 소개했다.

이어 흑인 인권 신장 단체인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의장을 지낸 멀리 에버스-윌리엄스가 엄숙한 목소리로 축복 기도를 할 때는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내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청했다.

4년 전보다 주름과 흰머리가 부쩍 늘어난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의 기쁨과 4년 재임의 중압감을 느끼는 듯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여유 있는 미소를 띠면서 뒷줄에 앉은 두 딸 사샤, 말리아에게 윙크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이 전날에 이어 또 취임 선서를 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 임기가 1월 20일 낮 12시에 끝나고 후임자의 임기가 시작되며 대통령 직무 수행에 앞서 선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취임 선서를 두 번 하는 셈이 됐다.

먼저 열린 바이든 부통령 선서는 소니아 소토마이어 대법관이 주재했다.

소토마이어 대법관은 대통령 또는 부통령 선서를 주관한 네 번째 여성이자 첫 히스패닉계 대법관이다.

이어 11시50분 오바마 대통령이 연단으로 걸어나와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앞에서 선서했다.

미셸 여사가 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로버츠 대법원장이 낭독하는 선서문을 따라 "나,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모든 능력을 다해 헌법을 수호할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라며 제44대 미국 재선 대통령의 취임을 알렸다.

사회자인 슈머 의원은 '버락 H. 오바마'로 소개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선서 때는 가운데 이름인 '후세인'을 정확히 발음했다.
또 선서문 끝에 "신이여, 저를 도와주소서(so help me God)"라는 문구를 본인의 요청으로 집어넣기도 했다.

미국 해군 군악대의 '대통령 찬가(Hail to the Chief)' 연주가 울려 퍼졌고 예포 21발이 발사되면서 취임 행사가 최고조에 달했다.

중앙 무대는 물론 무대 아래에 자리를 잡은 모든 참석자, 내셔널 몰을 가득 메운 수십만명의 인파가 일제히 환호했다.

선서가 끝나자마자 오바마 대통령은 15분가량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국민(one nation, one people)'을 주제로 국민 통합과 화합을 호소하는 취임 연설을 했다.

연설이 끝나자 켈리 클락슨이 공연했고 젊은 히스패닉계 시인이면서 동성애자인 리처드 블랑코가 축시를 낭독했다.

쿠바 관타나모 출신 이민자인 루이스 리언 목사가 축복 기도를 했고 가수 비욘세가 국가를 불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의사당 내 애국지사 동상실에서 약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 오찬을 하고 백악관 입성을 위한 펜실베이니아 대로 축하 행진에 나섰다.

경제가 완전한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정파 간 정치적 갈등이 여느 때보다 깊은 동시에 총기 규제, 연방 정부 예산 삭감, 국가 부채 한도 재조정 등 당면한 현안이 쌓여 있는 미국이지만 이날은 흑인 재선 대통령의 취임을 너나없이 축하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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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연합뉴스) 강의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