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에 실질적 권한 있다는 점 보여주는 것" 비판 제기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찰스 왕세자가 이전에 여겨졌던 것보다 더 많은 법률 제정안에 대해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왕실 동의(Royal Consent)' 권한을 행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총리실이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최소 39개의 법률 제정안이 입법 과정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또는 찰스 왕세자에게 동의 여부를 물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텔레그래프 등 영국 일간지들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정부 장관들과 고위 관료들은 왕실 소유지 등 왕실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주는 사안이라면 관련법 제정안에 대해 미리 왕실의 동의 여부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여왕이나 찰스 왕세자에게 동의 여부를 요청한 39개 법 제정안들은 왕실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은 물론 고등교육, 육아수당, 자녀 양육비, 신분증 등에 관한 내용까지 다양했다.

여왕은 지난 1999년 대(對) 이라크 군사작전 허가 권한을 여왕에서 의회로 넘기는 `대(對) 이라크 군사작전 법률안'을 거부했다.

여왕은 2004년 동성애자 결혼법(Civil Act) 제정안은 동의했다.

이는 여왕에게도 적용되는 조항이 있었던 까닭에 여왕에게 동의 여부를 요청했던 것이라고 일간지 가디언은 설명했다.

찰스 왕세자는 지난 2005년 이래 12건 이상의 법률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문서에 따르면 법제관은 입법 지침에서 왕실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법 제정안의 핵심 조항은 제외돼야 한다"며 왕실의 동의를 강조했다.

이번 정보 공개는 영국 정부가 관련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하다 법적 소송에서 패배함에 따라 이뤄졌다.

왕실은 이날 성명을 내고 왕실은 정부 각료와 공무원들로부터 권고를 받는 경우에만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는 영국 왕실에 상당한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찰스 왕세자는 정책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담은 수많은 서한을 장관들에게 보내 정치에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정보공개를 청구한 법학자 존 키르크호프는 "비록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왕실에 실질적인 영향력과 실질적인 권한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지난달 17일 엘리자베스 즉위 6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여왕이 내각 회의에 참석한 것을 두고도 왕실이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긴 바 있다.

참관인 자격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영국 왕이 평상시 내각 회의에 참석한 것은 조지 3세 왕 이후 231년 만의 일로 기록됐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