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내로 타결되더라도 누더기 해법만 나올 것이다. ‘재정절벽(fiscal cliff)’ 충격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재정절벽 타개 협상이 지난 30일(현지시간) 오후 다시 결렬되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같이 보도했다.

WSJ는 “정치권의 벼랑 끝 대치로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혼란을 몰고왔던 2011년 6월의 부채 한도 증액 협상이 되풀이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정치권은 시장의 압력에 못 이겨 막판에 엉거주춤 타협안을 마련했지만 시장의 신뢰를 잃을 대로 잃은 뒤였다. 경제 운용의 핵심은 ‘심리’인데 정치권이 보여준 불신으로 인해 투자와 소비 심리가 이미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벼랑 끝 대치…‘최후의 딜’ 성사 주목

민주당과 공화당 상원 지도부는 당초 이날 오후 3시까지 합의안을 마련해 밤 12시까지 상원에서 표결 처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부자증세, 퇴직연금 삭감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의 해리 리드 원내대표가 저녁 무렵 “아무것도 합의된 게 없다”고 하자 비상 대기 중이던 상원의원들은 오후 7시30분께 해산했다.

리드는 그러나 “아직 합의할 시간이 남아 있고 협상은 계속할 것”이라며 “31일 오전 11시에 상원 회의를 다시 소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과 협상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바이든도 수락했다. 둘은 과거 예산 문제 협상을 벌인 인연이 있어 ‘최후의 딜’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31일 모든 공식일정을 취소했다. 하원도 31일 오전 9시부터 미결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개원한다. 바이든과 매코널이 타협에 성공하면 서둘러 법안을 마련, 상원과 하원에서 차례로 통과시키고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면 재정절벽은 일단 면할 수 있다. 법안 처리를 위한 물리적인 시간이 이번 의회 회기 종료일인 오는 3일까지 넘어갈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때까지 여유가 있는 셈이다.

○재정절벽은 이미 ‘시작’

양측이 타협안을 마련해도 급한 불만 끄는 ‘스몰 딜’이 될 전망이다. 부자증세, 복지 지출, 부채 한도 증액 등은 뒤로 미루고 중산층의 세금 감면 혜택 연장, 장기 실업수당 지급 연장 등을 우선 타결해 1월부터 당장 나타나는 충격을 최소화할 가능성이 높다.

자산운용회사 블랙록그룹의 수석 투자전략가인 러스 코스테리히는 “재정절벽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응급조치에 불과할 것”이라며 “세금 인상과 정부 지출 축소에 따른 성장 둔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팀 퀼란 웰스파고 이코노미스트는 “정치권이 새해 정부 부채 한도 증액을 놓고 또다시 지루한 대치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며 “정치권의 불신이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계속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