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어린 시절 거쳐 `검은 케네디' 신화
취임후 이념논쟁ㆍ경제난 등 험로

미국 역사상 첫 흑인대통령의 신화를 창조한 데 이어 최초의 재선 흑인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새로 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인생 여정은 한편의 인간승리 드라마다.

아프리카 출신의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의 열등감을 극복하고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뒤 인권변호사를 거쳐 정계에 입문한 지 12년만에 백악관에 입성한 기적의 주인공이다.

최악의 금융위기 속에서 미국인들이 갈구하던 화두 `변화'를 내세워 흑인 돌풍을 일으키며 `검은 케네디'로 떠오른 그는 이번 대선에서 `앞으로(Forward)'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중단없는 전진을 역설, 또한번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1961년 8월 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당시 하와이 대학으로 유학 온 케냐인 흑인 아버지 버락 오바마와 캔자스 출신의 인류학도였던 백인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오바마가 2살때 이혼했고, 어머니는 그 후 인도네시아 남자와 재혼하면서 오바마는 유년기 4년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냈지만 어머니의 두번째 결혼도 파경으로 끝나면서 그는 외조부모가 살고 있던 호놀룰루로 돌아온다.

흑인 아버지, 아시아인 양부, 백인 어머니에 인도네시아와 하와이를 오가는 생활로 오바마의 어린 시절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로 얽혔다.

미시간 주지사를 지내고 대선 도전 경험까지 있는 재벌 가문의 아버지 아래서 하버드 법대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기업경영에 이어 정치권에서 경력을 닦은 밋 롬니 공화당 후보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생 초기인 셈이다.

이 속에서 극심한 정체성 갈등을 겪으면서 마약까지 접했던 오바마 대통령이었지만 하버드 법대에서 학회지 `하버드 로 리뷰'의 흑인 최초 편집장에 올라 `담대한 희망'을 가슴에 품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1996년 일리노이주(州)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2000년 연방 하원선거에서 낙선했지만 2004년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면서 전국적 정치인의 반열에 오른다.

인상적인 기조연설로 전국적 스타가 된 그는 4개월 뒤 상원의원 선거에서 70%의 득표율로 미국 역사상 흑인으로는 3번째이자 현역으로는 유일한 흑인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로부터 3년여 뒤인 2007년 2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흑인노예 해방의 정치투쟁을 시작했던 일리노이주 옛 주 정부 청사 앞에서 대권도전의 출사표를 던진 그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꺾고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된다.

본선 무대에 오른 그는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변화"라고 외치며 여성 부통령후보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의 돌풍을 등에 업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꺾고 결국 세계최강 미국의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취임 후 오바마 대통령은 또다시 나라 안팎에서 악재가 이어지면서 `험로'를 걷게 된다.

최악의 금융위기에 따른 여파가 계속되면서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지면서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특히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개혁정책을 비롯해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ADT)'로 대변되는 동성애자 평등정책, `버핏세' 등 부자증세, 이민정책 개혁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면서 보수 진영으로부터 이념적 갈등을 부추겼다는 공격이 이어졌다.

재선에 도전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대장정도 `험로'였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회복세에 리비아 벵가지 영사관 피습 사건, 이란 핵개발 및 (對) 이스라엘 관계 경색 등의 악재가 속출했고, 첫번째 방송 토론회에서 특유의 기백을 보여주지 못한 채 참패하면서 지지율은 떨어졌다.

그러나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Sandy)' 전후로 발 빠른 대응을 보인 데 대한 호평과 함께 7%대로 떨어진 실업률로 승기를 잡았고 결국 미국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4년의 기회를 다시 한번 잡았다.

하버드법대 동창인 부인 미셸 오바마와 사이에 두 딸 말리아(14)와 샤샤(11)를 두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승관 특파원 huma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