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오카와 초등학교의 비극…매뉴얼은 안 통한다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5분, 일본 미야기(宮城)현 이시노마키(石卷)시 오카와(大川) 초등학교. 갑자기 ‘쩡’하는 소리와 함께 교실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십번도 더 겪었던 지진, 그리고 대피연습.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금방 그치겠지 싶었는데 오히려 더 심해졌다. 교실엔 비명과 울음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모두 운동장으로 집합하라”는 교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교사들은 공포에 질린 아이들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교사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몇몇 교사는 아이들 머릿수를 세고, 나머지는 대책을 논의했다. 6m 정도의 쓰나미가 올 것이라는 기상청 발표가 전해졌다. 지대가 낮은 학교도 안전지대가 아님은 분명했다. 의견이 분분했다. 한 교사가 학교 뒷산으로 대피하자는 의견을 냈다. 웅성거리기만 할 뿐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모두 무사히 이끌고 뒷산으로 대피할 수 있을까, 지진이 이렇게 크게 났는데 뒷산이 무너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다른 방안은? 기상청에선 쓰나미 경보를 상향 조정했다. 이번엔 높이가 10m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교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가장 무난한 답안지를 선택했다. 학교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다리 근처로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마을에서 그쪽이 가장 지대가 높고, 가까이에 대피장소도 마련돼 있다는 이유였다.
日 오카와 초등학교의 비극…매뉴얼은 안 통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대피 경로를 결정하고, 아이들이 모두 모여 있는지를 챙겨보느라 학교운동장에서 45분을 허비해 버렸다. 뛰어서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 대피 장소. 그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쓰나미는 학생과 교사들을 덮쳐 버렸다. 당시 이 학교의 재학생은 108명. 이 중 7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인솔하던 교사 10명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1년 반이 훌쩍 지난 지금도 가슴의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왜 아이들을 운동장에 45분이나 방치했는지, 무슨 이유로 학교 바로 뒷산으로 대피하지 않았는지, 스쿨버스는 왜 그 시간 움직이지 않았는지….

그날 선택지는 많았다. 그러나 최종 결정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고, 선택의 방향도 맞지 않았다.

교육당국과 방재당국의 재해방지 시스템에도 근본적인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2004년 작성된 ‘해일침수지역 예측도’에 따르면 쓰나미 피해지역은 기껏해야 해안에서 3㎞까지다. 이 같은 예측대로라면 해안에서 5㎞ 떨어진 학교는 아무 피해가 없어야 했다. 하지만 쓰나미는 학교를 덮쳤다. 예상보다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하면서 과거의 매뉴얼이 아무 소용없게 된 것.

오카와초교 참사는 과거의 틀에 갇힌 의사결정이 위기 시 어떤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위기는 늘 반복되지만 과거와 같은 경로, 동일한 양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늘 우리의 고정관념,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무너뜨리며 온다.

이른바 ‘블랙스완(black swan·검은 백조)’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언한 나심 탈레브는 베스트셀러 ‘블랙스완’에서 과거의 경험과 관찰에 근거한 지식의 위험성을 되풀이해 강조한다. 얼핏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 그 블랙스완이 지금 우리 앞을 서성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이제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또 하나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선진국으로 비상할 것이냐,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것이냐의 기로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적-외적 위기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앞날을 위협하고 있다. 경제는 장기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투자와 고용 여력도 현 단계에선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고령화, 성장 일변도 경제시스템과 복지·경제민주화 패러다임의 충돌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소모적인 정쟁과 지정학적 불안도 온존하고 있다. 외적으로는 전 세계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는 유럽발 재정위기가 있다. 유럽 경제가 나빠지면 중국의 대유럽 수출이 줄고, 한국의 대유럽 수출도 타격을 받는 구조다. 이번 위기가 종전과 다른 점은 선진국 경제가 언제 회복될지 불확실하다는 것. 외환위기 때는 선진국 경제가 튼튼히 버텨줬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 새로운 경로를 모색하는 아이디어와 실행 능력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판단과 선택은 조금이라도 지체할 수 없다. 이것은 위기에 따른 대가를 치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기회를 잡느냐, 못 잡느냐의 문제다. 역사는 위기 뒤에 늘 승자와 패자를 갈랐다.

도쿄=안재석 특파원/주용석 기자 yagoo@hankyung.com